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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미국건축가협회 금메달 수상자 발표

‘아실로마 YWCA 캠퍼스(Asilomar YWCA Campus)’, 캘리포니아 퍼시픽 그로브(Pacific Grove, California)

Image courtesy of Joel Puliatti; Julia Morgan, Architect of Beauty.

 

미국건축가협회(AIA;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가 2014년도 AIA 금메달 수상자를 발표하였다. AIA 금메달은 건축의 이론과 실기를 아울러 지속될 영향을 미친 개인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1907년 애스턴 웹 경(Sir Aston Webb)을 시작으로 2013년도 수상자 톰 메인(Thom Mayne)에 이르기까지, 기나긴 수상자 명단이 오랜 시상 역사를 증거한다. 하지만 그 많은 수상자 중에 여성 건축가의 이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올해까지는 말이다.

 

올해 AIA 시상 위원회는 사상 처음으로 여성 건축가를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그 주인공은 20세기 초에 활동했던 여성 건축가 줄리아 모건(Julia Morgan)이다. 줄리아 모건은 미국 건축 역사는 물론 미국 여성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1872년에 태어난 모건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University of Californian, Berkely)에서 건축을 공부하였다. 당시 UC 버클리 교수이자 1951년에 AIA 금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던 버나드 메이백(Bernard Maybeck)은 그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에콜 데 보자르 입학 추천서를 써주기도 하였다. 줄리아 모건은 세 번의 도전 끝에, 에콜 데 보자르 건축과 최초의 여학생이 되었다.

 

‘밀스 대학 도서관(Mills College Library)’, 오클랜드(Oakland)

Image courtesy of Mills College, F. W. Olin Library, Special Collections.

 

‘세인트 존스 장로교 교회(St. John’s Presbyterian Church)’, 캘리포니아 버클리

Image courtesy of Mark Anthony Wilson; Julia Morgan, Architect of Beauty.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그녀는 50여년간 현업 건축가로 활동하며 다수의 건물을 설계하였다. 700여개에 달하는 줄리아 모건의 건축물은 주택, 교회, 호텔, 상업용 빌딩, 뮤지엄 등 거의 모든 유형을 포괄한다. 특히 그녀의 작업 세계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이라면, 다양한 역사적 스타일을 구사했다는 점이다. 튜더 시대 및 조지 왕조 시대의 주택에서, 로마네스크 복고풍의 교회 건축, 스페인 식민풍의 전원 저택 등 줄리아 모건은 서구 건축 역사의 다양한 스타일을, 해당 프로젝트의 특징과 맥락에 맞게 취사선택하였다. 이처럼 의고적인 스타일에 능하였지만, 선택한 소재까지 옛 것은 아니었다. 줄리아 모건은 당시 모더니즘 건축의 대표 소재로 여겨지던 콘크리트를 적극 활용하여, 고딕 시대의 아치와 창문 장식 무늬, 장식적인 원주와 같은 요소를 구현하곤 했다. 건축의 소재나 건축 방식에 있어 그녀가 보여준 접근이 미래지향적이라는 재평가가 이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허스트 캐슬(Hearst Castle)’, 캘리포니아 샌 시미온(San Simeon, California)
Image courtesy of Mark Anthony Wilson; Julia Morgan, Architect of Beauty.

 


‘허스트가 윈툰 저택(The Hearst Wyntoon Estate)’, 캘리포니아 맥클라우드(McCloud, California)
- 줄리아 모건의 스승인 버나드 메이벡이 설계한 저택으로, 메이백은 모건을 조수 건축가로 고용하여 함께 설계를 진행하였다.
Image courtesy of California Polytechnic State University, San Luis Obispo, Robert E. Kennedy Library, Sarah Holmes Boutelle Archive.

20세기 초의 여성 건축가로서, 줄리아 모건의 이름에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러 차례 따르곤 한다. 짐작 가능할 터, 그녀가 마주해야 했던 현실의 벽도 높았다. 처음 에콜 데 보자르 시험에서 떨어졌지만, 두 번째 시험까지 탈락할 이유는 성별을 제외하면 없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존 갈렌 하워드의 회사에서 신참 건축가로 일하던 시절,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가의 의뢰로 그녀는 고대 그리스식의 야외 극장을 강화 콘크리트 공법을 이용하여 건축하였고 의뢰인으로부터도 만족스러운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가 받은 설계비는 보잘 것 없었다. 고용주였던 존 갈렌 하워드는 모건이 뛰어난 “설계자(draftsman)”라면서도 “여자이기 때문에 설계비를 거의 주지 않아도 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줄리아 모건의 시대로부터 근 한 세기가 지났다. 올해 3월, 프리스커(Pritzker) 건축상 심사위원회에 하나의 청원이 제기되었다. 1991년의 수상자가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 한 사람이 아닌 드니즈 스콧 브라운(Denise Scott Brown)과의 공동 수상이 되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브라운은 건축사무소 벤투리 스콧 브라운 앤드 어소시에이츠의 공동 파트너로서 22년 이상 활동하였고, 건축 이론 및 디자인 분야에서 벤투리와 함께 30년 넘게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1972년작 <라스베가스의 교훈(Learing from Las Vegas)> 역시 벤투리와 그녀의 공저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역할을 ‘아내’로만 바라봄으로써, 프리츠커 심사위원단은 오직 그녀의 남편인 벤투리만을 수상자로 선택했다.” 프리츠커 위원회 측은 이전의 심사위원들이 결정한 결과를 이후의 심사위원이 재심할 수는 없다는 원칙적인 이유를 들어, 청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www.a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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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워드 #건축 #줄리아 모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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