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이 가장 많이 본 디자인 뉴스
해외 리포트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 아이콘 인쇄 아이콘

칠흑어둠 속의 이색 식당 블린데-쿠



스위스의 상업중심지인 취리히에 이색식당이 하나 있다. 불빛이라고는 전혀 없는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식사를 하는 블린데-쿠(blindekuh)라는 바 레스토랑이 바로 그것이다. "블린데 쿠"란 눈먼 소라는 뜻으로 눈 가리개를 한 술래가 소리에 따라 사람을 찾아 누구인지를 맞혀내는 놀이의 이름인데, 스위스의 시각장애인 협회에서 시각장애인과 일반인과의 거리를 좁히는 문화행사로 빛이 없는 레스토랑을 기획하여 이 이름을 붙였다. 블린데-쿠는 경영진을 포함한 식당 종사자의 2/3가 시각장애인들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눈으로 보는 것, 즉 시각정보에 많이 의지하는데, 이를 뒤집어 시각정보를 차단해 줌으로써 다른 감각기관, 즉, 후각, 청각, 촉각 그리고 미각에 신경을 집중하여 이들 감각을 섬세하게 일깨우는 점을 이용하였다. 이처럼 시각이 아니라 다른 감각기관에 의지한 사물과 공간경험은 이제까지는 알지 못했던 색다른 세상경험이 된다. 빛이라곤 전혀 없는 어둠속에서는 오히려 시각장애인들이 그들의 예민해진 감각들로 더 자유로이 움직일수 있기 때문에, 갑자기 아무것도 볼수 없어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자리에 안내하고, 음식을 나르는 일을 맡게된다.

식당로비나 주방에는 조명이 있지만, 음식을 먹는 식당실내는 담배를 필수없을 정도로 칠흑같은 어둠만이 존재한다. 식탁앞에서는 메뉴카드를 읽을수 없기 때문에, 미리 인터넷에 공개되는 그 주 메뉴를 알아보거나 식당로비에서 우선 주문을 하고 시각장애인의 안내에 따라 서로 어깨에 손을 얹어 줄을 지어 자리에 안내된다.

음식이 차려지면 전혀 볼수 없는 상황에서 빈 포크질, 헛 숟가락 질을 하기도 하고, 아예 이런 도구들을 내버려두고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어도 아무도 "알아보고 혀를 차는" 사람이 없다. 어둠에 익숙하지 않은 비시각장애인들은 바깥세상에서 처럼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이 무엇인지 미리 알지는 못하고 단지 향기와 혀 끝에 닿은 감각으로 그 정체를 알게 된다. 이렇게 오로지 혀에만 의존해 느끼는 음식 맛은 "모양이 맛의 반이다"는 말이 무색할정도로 인상이 깊다. 보이지 않는 불안과 긴장 때문에 음식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음미하게 되는 것도 잘 안다고 생각하던 음식들 맛을 새롭게 느끼는데 한 몫 할 것이다.


* 이전에 예배당 건물을 개조하여 쓰는 '블린데-쿠' 입구.


블린데-쿠에는 식당말고도 음료를 마시는 바가 따로 운영된다. 이곳은 4명까지는 예약없이도 자리를 잡을수 있는데, 식당처럼 어두깜깜한 바에서 술을 마시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그들의 겉모습에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 내용, 목소리, 냄새등으로 알아가게 된다.

식당의 메뉴는 매주 제철 음식으로 바뀌기는 하지만, 고기, 생선, 채식등 보통 한가지 정도 요리를 제공하는 단순한 메뉴 때문에 잘못하면 단조로와지기 쉬운데, 블린데-쿠 팀은 재즈 콘서트나 오리엔탈 집시 음악회 등 작은 음악회나 감각알기 코스 같은 것을 같이 병행하여 어둠속에서 예민해진 귀가 잡아내는 선율과 소리를 경험하게도 해준다.

스위스의 블린데 쿠는 다음주면 개장 5주년이 되는데 1999년 문을 연 이후 작년말에 이미 10만여명이 넘는 사람이 찾았고, 지금도 주말에는 예약이 밀려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독일 시각장애인 협회에서도 스위스 모델을 따라 쾰른과 베를린에 깜깜한 식당 체인인 '운지히트-바(Unsicht-Bar:보이지 않는 바)'를 열었다.



스위스가 고집스럽게 어둠지키기 원칙을 따르는데 비하면 (이는 시각장애인을 기준으로 운영되어 그림사용이 자제된 블린데-쿠의 웹 사이트에도 나타난다), 베를린의 경우는 웹에 충분한 사진자료가 올려져 있고 야외 테이블을 설치하고 있기도 한다.


* 베를린 어둠식당 '운지히트 바' 안내자와 로비 모습



스위스와 독일에서 진행되는 이들 '칠흙어둠 속의 식당'들은 시각장애인이 그들의 핸디캡을 오히려 떳떳한 장점 활용할수 있는 노동공간을 제공한 점,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역할바꾸기를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깊게한 점, 시각의 그늘에 가리워졌던 다른 감각 일깨우기, 그리고 무엇보다 위생과 청결에 대한 관리와 믿음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새로운 문화로 승화시킨 점(이런 사실들로 블린데-쿠는 수많은 상을 받기도 함)에 눈길이 간다.


블린데-쿠
www.blindekuh.ch

깜깜한 블린데-쿠


운지히트 바
www.unsicht-bar.com






"칠흑어둠 속의 이색 식당 블린데-쿠"의 경우,
공공누리"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사진, 이미지, 일러스트, 동영상 등의 일부 자료는
발행기관이 저작권 전부를 갖고 있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자유롭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목록 버튼 이전 버튼 다음 버튼
최초 3개의 게시물은 임시로 내용 조회가 가능하며, 이후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임시조회 게시글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