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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의 호기심을 간직한 디자이너 알란 플레쳐(Alan Fletcher)

영국사람들은 ‘러블리(lovely: 사랑스러운)’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날씨가 좋아도 ‘러블리’,음식이 맛있어도 ‘러블리’,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도 ‘러블리’라고 표현한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하루에도 몇번씩 쓰여지는 이 단어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디자이너를 개인적으로 꼽자면, 현재도 세계 최고의 디자인 회사중 하나로 인정받는 펜타그램(Pentagram)의 설립자중 한명인 알란 플레쳐(Alan Fletcher)를 들 수 있겠다. 테렌스 콘란이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가진 디자이너라면, 알란 플레처는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호기심을 간직한 아티스트 마인드를 가진 그래픽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31년 생으로 테렌스 콘란, 피터 블레이크(Peter Blake),데렉 버썰(Derek Birdsall)등과 함께 영국의 근대 디자인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그는, 현재는 개인으로 디자인 활동을 한다. 펜타그램에서 20년동안 몸담았으나 이제는 점점 거대해져 디자인 자체보다 각종 미팅과 사람들 관리, 서류결재 등등의 사무적인 일이 많아져 몇년 전 은퇴하였다고 한다. 그래픽 디자인 관련 전문출판사인 페이든(Phaidon)사와는 펜타그램 시절부터 오랫동안 일을 같이 하고 있으며, 꾸준히 개인전시회을 열고 저서를 출판하는 등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자택에서 작업하는 알란 플레쳐의 모습

알란 플레처는 해머스미스(Hammersmith), 센트럴 세인트 마틴의 전신인 센트럴 스쿨(the Central School), 왕립 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그리고 미국의 예일(Yale) 대학등 아트 스쿨을 네 군데나 다니면서, 그당시 디자인계를 이끌어갔던 교수진들과 동료들의 스타일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당시 디자이너들의 한결같은 꿈이었다는 미국 포춘(Fortune) 매거진 표지를 디자인하게 되면서 이름을 날리게 된 그는, 몇년 후에 가족들이 있는 영국으로 돌아와 타임(Time)지와 라이프(Life) 매거진 등과 일하면서 친분이 있는 동료 디자이너들과 함께 자신들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세울 계획을 준비하게 된다. 콜린 포브스(Colin Forbes), 밥 길(Bob Gill)과 함께 펜타그램 전신이 되는 플레처 포브스 길(Fletcher Forbes Gill)을 설립하였다.

몇 년전 런던의 작은 디자인 회사 사람들을 위해 열린 알란 플레쳐의 세미나에서 그가 들려준 펜타그램 설립 이야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알란, 콜린, 밥 이 들 세명은 예전부터 같이 회사를 설립하자고 예기를 하고 있던 참이었는데, 미국인으로 영국에서 활동하던 밥이 선뜻 결정하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밥은 마음에 드는 여자친구가 생겨 데이트 장소를 나머지 둘에게 추천받았고, 당시에 브라이튼에 가면 돌아오는 기차가 일찍 끊겼던 걸 노려 이들은 브라이튼을 추천하였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같이 동행했던 여자친구가 마음에 들지 않았고, 밥은 남은 시간을 죽이기 위해 바닷가를 거닐다 점보는 사람(fortune teller?)이 있길래 여자친구를 안으로 들여보내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겼다. 이후에 여자친구가 나와서 정말 기가막히게 잘 맞힌다는 말을 듣고, 그 또한 장난삼아 한번 들어갔다. 점장이가 밥을 보자마자 ‘당신이 두 명의 동업자와 함께 새 사업을 하는게 눈에 보인다’고 하였고, 밥은 그 날밤 당장 런던으로 들어와 나머지 둘의 집에 쳐들어가서 설립한것이 후에 펜타그램이 된 이들의 회사라고 한다.

알란 플레처가 디자인한 펜타그램 로고

이 글에서는 알란 플레처의 디자인들중 몇가지를 소개하도록 한다. (출처 : The art of looking sideways, Beware wet paint)

알란 플레처의 작품들을 보면, 주변에서 흔히 지나칠 수 있는 아이템을 그냥 놓치지 않고 호기심있게 해석하는 것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특히 하나의 관심사를 발견하면, 여러 번에 걸쳐 아이디어를 변형하여 각가지 다른 작품으로 변형시키곤 한다. 한 예로 디자인 회사의 리셉션 공간에 붙일 사인을 디자인해달라는 문의를 받고, 알란 플레쳐는 환영한다는 의미의 웃는 입 모양을 디자인하였다. 이후에 런던 교통청(London Transport)으로부터 시민들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길 장려하는 포스터 디자인을 의뢰 받았을 때 그는 웃는 입 모양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버스나 지하철 등에서 사람들이 즐겁게 대화 나누는 모습을 떠올려, 마치 칵테일 파티를 형상하는 것 같은 즐거운 표정의 입 모양들을 디자인하였다.

그의 디자인에는 단순한 모양에 선을 첨가하여 완전히 다른 개념으로 변화시킨 아이디어들이 많이 발견된다. 런던의 한 가구 전시장의 개장기념으로 열린 연간 디자이너 토요일 행사(Annual Designers Saturday)를 위한 포스터 디자인에서는, 간결한 색상과 형태를 추구하는 칸딘스키 이론에 따라 가장 기본적인 삼원색과 원, 삼각형, 사각형 위에 연필로 선을 덧붙여 파티 분위기를 만들었다. 수직으로 피사의 사탑을 그리고 사선으로 땅을 표시하고, 노란 타원에 검은 펜으로 부리와 다리를 덧붙여 병아리 모양을 만드는 등 비슷한 개념의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알란 플레처의 디자인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의 V&A 로고타입을 들 수 있을 것이다. ‘Less is more’라는 그 당시 디자인 경향에 맞추어 그는 장식을 더하기보다 기본 요소를 제거하는 타이포그래피적 디자인을 제시하였다. 1989년에 디자인된 이 로고는 사실 십여 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영국에서는 클래식한 심볼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V’ ‘&’ ‘A’ 라는 세가지 요소에서 글자를 나누고 반을 제거하여 하나의 심볼로 표현하였다.

알란 플레처는 수집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노팅힐에 위치한 그의 집에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모은 물건들과, 집 앞의 포토벨로 마켓에서 하나 둘씩 사다 모은 장난감이나 인형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전시회나 콘서트 티켓, 해외여행 중에 받은 수화물 스티커,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의 우표 등 자신의 일상과 관련된 것들도 오랫동안 수집해온 그는, 동물띠를 나타내는 캘린더 디자인에 사용하기도 하였다.

‘타일위의 밤(Night on the Tiles)’이라는 이름의 이 포스터는 나무로 만들어진 펜의 반대쪽에 잉크를 묻혀 그렸다. 디테일보다는 전형적인 자세를 묘사함으로써 고양이다운 모습을 나타내었다.

종종 알란 플레처는 의도한 아이디어가 확연히 나타나는 디자인을 하였다. 부모형제가 없는 아이들을 입양하고, 돌보는 가족과 같은 커뮤니티인 독일의 킨더스도프(Kindersdorf) 마을을 홍보하기 위한 포스터로 어린이의 웃음을 형상화 한 얼굴모양을 디자인하였다. 한편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지구 보존에 관한 컨퍼런스 포스터 디자인으로 지구를 받히는 작은 손가락이라는 아이디어를 제안하였다. 특히 가장 작은 새끼 손가락을 그려 넣음으로써, 이미지를 극대화 시켰다.

맥주로 유명한 행사인 뮌헨의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는 원래 1810년에 Ludwig of Bavaria 왕자와 Therese von Sachsen-Hildburghansen 공주의 결혼식 행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독일 관광청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큰 민속 행사중 하나로 꼽히는 옥토버페스트를 위한 공식 심볼을 요청받은 알란 플레처는 커플을 상징하는 맥주 잔 모습의 디자인을 하였다.

알란 플레처는 특히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집 대문을 A-Z 알파벳으로 직접 디자인하기도 하였다. M과 N을 사이로 양쪽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Q부분은 대문이 멈출 때 꼬리 기능을 한다. 그의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관심은 2여 년간에 걸친 세계 여러 지역과 관련된 그래픽 디자인에서 느낄 수 있다. 뉴욕을 빅 애플(Big apple)이라는 메타포로 표현한 디자이너 마시모 비그넬리(Massimo Vignelli)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에게 맨하탄이 자신들에게 의미하는 바를 표현해 달라고 하였는데, 알란 플레쳐는 오른쪽 작품처럼 높은 건물로 가득한 맨하탄의 모습을 글자로 표현하였다.

알란 플레처의 디자인 중 많은 작품들은 쓰기(writing), 그리기(drawing), 그리고 그것의 의미(meaning)에 대한 관계를 탐구한다. 이러한 것은 앞의 ‘맨하탄’에서도 잘 느낄 수 있는데, 아크릴 물감의 튜브에서 바로 짜내면서 표현한 예술관련 프랑스 책 커버 디자인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폴란드 정부에 의해 히틀러 정복(???) 50주년을 기념하는 포스터를 의뢰 받은 알란 플레처는 며칠간 고심하며, 이들 날짜 사이에 연관성을 찾던 중에 정복일인 1939년 9월 1일과 50주년 기념일인 1989년 9월 1일을 한번에 표현하는 재치있는 디자인을 하였다. (유럽에서는 날짜를 일.월.년으로 표시하여 각 날짜는 1.9.39와 1.9.89로 표현된다.) 오른쪽 사진은 한 디자인 세미나 포스터로, 크레용, 붓의 반대쪽 부분, 볼펜, 목판 연필 등과 종이를 찢는 등 여러가지 기법을 사용하여 각각의 알파벳을 표현하였다.

신문에서 알파벳을 오려 전혀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아이디어들도 많이 선보였다. 프랑스 생수브랜드인 에비앙(evian)의 철자를 새로 조합하여 순수한(naïve)라는 생수가 지니는 의미를 표현하였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많이 알려진 그이지만, 제품 디자인과 우유곽을 이용한 동물인형을 만드는 등 3D에도 관심을 보였다. 빅토리아 시대에 편지꽂이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는 이 작품은, 스테인리스 공이 양쪽에서 받쳐주어 편지를 잘 고정시켜준다.

페이돈 출판사와의 인연으로 그동안 알란 플레처가 출판에 관여한 책들은 많이 꼽을 수 있다. 그 중에서 40여 년이 넘게 디자이너로 살아온 그의 디자인 철학와 생각이 담긴 ‘The art of looking sideways’와, 그를 아는 동료 디자이너들의 눈으로 바라본 알란 플레처의 디자인에 관한 책인 ‘Beware wet paint’는 디자인계에서 대표적인 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것도 역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옆으로 바라보는 것의 미학(The art of looking sideway)이라는 제목의 책은 굳이 그래픽 디자인이 아니라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소장할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집필하기 시작해서 출판되기까지 십여년이 넘게 걸린 대작이기도 하며, 고급지와 컬러사용 때문에 가격이 만만치 않은 디자인 관련 서적들 속에서 대중에게 보급할 수 있는 가격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홍콩에서 인쇄를 하는 그의 세심함도 느낄 수 있다. (참고로 저는 책의 판매와 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는 세계 곳곳의 숙소와 음식점 등을 추천하는 피드백(Feedback)이라는 이름의 가이드북 또한 6년째 만들고 있다. 상업적인 목적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순수하게 디자이너들에게 자신들이 선호하는 장소과 관심사들을 추천받아 발간되는 이 책은, 알란 플레쳐의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그가 아는 전세계의 디자이너, 건축가, 사진작가 등을 통해 피드백을 받는다.

한가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면 오랫동안 발전시키는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가진 디자이너 알란 플레처. 디자인이 아무리 상업적인 목적을 가지고, 요즘과 같은 세상에서는 사용자와 클라이언트들을 만족 시키는 게 우선이라고는 하지만, 디자이너들 자신이 즐길 수 있는 디자인도 중요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하는 교훈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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