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저금통

트렌드

HOME > 트렌드 > 디자인 리포트

해외 리포트

돼지 저금통

등록일2005.01.03 작성자 박소영(designfo) 조회수15191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 . . . . . . . . . . .

새해에는 뭘 하겠다는 계획중에 빠지지 않는 것 하나가 바로 저금이다. 요즘은 은행 업무도 인터넷으로 처리할수 있는 때이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돼지저금통은 저금의 상징이 된다. 돼지 저금통하면 아직도 어렸을 때 보았던 동네 구멍가게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던 빨간 플라스틱의 넙죽엎드린 펑퍼짐한 돼지 저금통 이미지가 떠오른다. 독일에서 본 돼지 저금통들은 동글동글한 공이나 배가 빵빵한 풍선을 닮아있었다.

재작년, 그러니까 2003년 말 친구를 따라, 즉 특별한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케아에 갔다가 재미난 모습의 색색가지 돼지 저금통을 발견하고 한 마리 데리고 왔다.

*이케아 돼지저금통, design: Monika Mulder

별달리 뚱뚱하지 않은, 털썩 주저앉아 있는, 스페인에서 만들어졌다는 연두색의 이 돼지 저금통을 보니, 어렸을때 보았던 빨간 돼지저금통 모습과 교차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물어갔다.

왜 사람들은 돼지를 저금통 모양으로 만들었을까?, 포실포실한 모습처럼 돈이 불어나라는 의미라면, 이슬람 문화권처럼 돼지를 금기하는 곳에도 과연 돼지저금통이 있(었)을까?, 나라별로 돼지저금통 모습, 즉 돼지 이미지는 어떻게 다를까? 등등...

게으름과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한해를 보내고 2005년을 맞이하면서 다시 돼지저금통 생각을 하게 되어 인터넷을 뒤적였다.

돼지저금통의 역사는 저금의 역사 그리고 인류 문화에서 돼지의 역할과 깊은 관련이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된 저금통 모습은 기원 2세기전 현재 터어키 영토인 이오니아의 프리에네에서 발견된 그리스 보물보관 신전 모습을 한 것이다. 지붕 꼭대기에 동전을 넣은 구멍이 있는 이 보물신전 형태의 통을 포함한 저금통을 고대 그리스에서는 데사우로스(Thesauros)라고 하는데, 후에 불어와 독일어에서 금고라는 뜻의 단어 트레조어(Tresor)의 어원이 된다.

로마시대에는 꿀벌처럼 부지런히 돈을 모으라는 의미에서 흙으로 빚어 구운 벌집 모양 저금통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 "꿀벌집"은 독일의 경우 20세기초, 돼지모양의 저금통이 퍼지 전까지 저금통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어 왔다.

중세에 들어와서는 열쇠를 사용하는 잠금장치가 달린 철제로 만들어진 저금통이 사용되었는데, 이외에도 여러 가지 행운과 부지런함을 상징하는 동물모양 -다람쥐, 무당벌레, 코끼리, 닭, 돼지- 의 저금통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특히 독일 튀링엔 지방의 빌레벤에서는 13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돼지모양 저금통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중세에는 특히 '돼지-항아리'라는 이름의 소금(당시 소금은 금의 가치를 지녔다)을 저장하는 배가 불룩한 용기가 사용되었는데, 후에 금전경제가 발달하면서 소금대신 돈을 저장하는 용기로 변하게 된다.

이후 저금통들은 각 시대 미술, 문화 양식을 반영하는 재료와 모양, 장식이 첨가되었는데, 바로크 이후부터는 아이들의 세례선물 품목에 빠지지 않을만큼 그 가치가 중시되고 고급화되기도 하였다.

여러형태의 저금통 중에서 현재 우리가 아는 돼지모양의 저금통은 19세기 영국에서 돼지항아리 대신 돼지저금통이 퍼져가면서 자리를 잡게 된다. (한국의 어느 사이트에서는 돼지저금통의 기원을 돼지를 팔아 나병환자를 도우려는 어떤 어린아이의 노력으로 서술하는데, 이것이 19세기 영국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한 근대형 돼지저금통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돼지는 여러 문화권에서 다산과 행운을 상징해 저금통 모양으로 안성마춤이었는데, (이슬람권의 돼지모양 저금통은 인터넷에서 찾을수 없었다) 특히 유럽에서는 봄에 아기돼지를 장만해 한해동안 남은 음식물 처리용등으로 쓰다가 겨울이 시작하면 잡아 겨울양식을 마련하던 풍습이, 돼지저금통을 깨는 풍습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숫자와 코드로 기록되는 저금통장 제도가 발달한 현대에는 실제 큰돈을 모으는 저금통의 의미는 많이 줄어들고, 동전모으기 통이 대신하게 된다. 돼지저금통들도 이에 따라 이전처럼 내용물을 많이 채울수 있는 빵빵한 배 대신 자유로운 모습과 자세의 장식적인 형태가 등장하게 된다. 저금통을 깨던 풍습도 열고 닫을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면서 사라지게 되고 오래 사용할수 된 점도 돼지저금통의 장식성을 뒷받침 하게 된다.

최근에는 은행 등의 홍보용품외에 이처럼 장식성이 강조된 제품들이나 유머스런 형태들이 돼지저금통 신세대를 이루는데 생각보다 많은 디자이너가 돼지저금통을 디자인을 한 것을 알수 있다. 예를 들어 포르쉐 디자인에서 1997년 오스트리아 은행을 위해 돼지저금통을 디자인 하기도 하였다.

* 포르쉐 디자인, 오스트리아 은행 돼지 저금통, 1997

특히 리첸호프 사에서는 2003년부터 돼지저금통 '피기뱅크' 시리즈를 컬렉션에 새로 추가했는데, 여기에는 아우게, 파울 지오바노풀로스, 카티아 마켄스-하슬러, 페트라 페쉬케스, 암브로지오 포찌, 헤르만 라이홀드, 미햐엘 지거 등이 돼지저금통을 치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