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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경험 디자인 A to Z,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이정주 교수

사용자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디자인 염력은 어디서 오는가? 아이디어 빼곡한 접착 메모지 세 팩 정도는 사무실 벽 면에 너끈히 붙여져 있어야, 서비스 디자인도 아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디자인 씽킹, 사용자 경험 디자인, 인간 중심 디자인(HCD: Human Centered Design), 서비스 디자인 툴킷, 서비스 디자인, 경험 디자인. 무수한 개념의 산 너머,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이정주 교수는 싱가포르에서 이 분야의 전문가로 싱가포르 정부와 기업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후학을 양성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서비스 / 경험 디자인에 대해, 현업 디자이너와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과 그에 대한 교수의 답을 정리하여 공유한다.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이정주 교수는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핀란드 알토 대학교에서 디자인 박사과정을 마친 후, 2014년부터 싱가포르 국립대학교에서 서비스 디자인과 경험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 싱가포르 노동부, 교육부, 국세청에 디자인 자문을 하고 있으며, 싱가포르 주요 은행인 DBS와 OCBC를 비롯한 글로벌 항만운영사 PSA 등과 다수의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 ©이정주

 

 

‘서비스 디자인Service Design’과 ‘경험 디자인Experience Design’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하면서도, 분리해서 말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무엇이 다른 거죠?

 

서비스 디자인과 경험 디자인의 공통점을 단 하나의 키워드로 이야기하면, ‘사용자 경험’입니다. 둘 간의 차이점을 하나의 키워드로 이야기하면, ‘시스템’이고요. 서비스 디자인과 경험 디자인 둘 다, 사용자의 현재 경험과 미래 욕구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이 사용상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디자인을 하는 것이 핵심 목표이지만, ‘사용자’를 정의하는 범위가 좀 다릅니다. 경험 디자인에서는 디자인 결과물을 직접 사용할 사람들이 그 디자인과 상호작용(interaction)함으로써 얻는 경험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서비스 디자인에서의 사용자는 그 범위와 차원이 좀 더 넓고 다양합니다. ‘서비스’라는 플랫폼에 참여해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고려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종합병원 응급실 서비스 디자인에서는 환자뿐만 아니라, 응급실의 간호사, 의사, 앰뷸런스 담당자, 환자의 가족들이 어떤 형태와 경로를 거쳐 서로 상호작용하고, 어떤 경험을 하는지 고려해야 합니다. 다른 예로 한국의 ‘배달의 민족’ 같은 서비스의 경우에는 서비스 고객 및 참여 식당들, 배달하시는 분들을 디자인 과정에서 이해하고, 그들을 위해 디자인하는 것이고요.

 

이렇듯 다양한 역할의 사람들이 상호작용하고 협력하면서 서비스를 구성하고 그 안에서 가치를 창출해 내는데, 이러한 협력 구조, 혹은 가치 창출 구조가 ‘시스템’입니다. 따라서 서비스 디자이너들은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니즈(needs)를 상호 충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협력하여 새로운 형태의 서비스를 만들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결국, 서비스 디자인은 경험 디자인에 비해 좀 더 ‘구조적인 문제’를 다룬다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자연스레 ‘직원 교육’, ‘조직 문화 혁신’ 등도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의 주제가 되죠.

 

 

최근에 <<새로운 디자인 도구들 (공저: 이승호)>>이라는 책을 출판하셨어요. 독자들의 특징과 필요도, 책에서 얻어 갈 수 있을 정보를 각각의 ‘퍼소나’로 정리하고, 그에 따라 책의 내용을 풀어낸 점이 독특합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서 이런 독특한 구성의 책을 구상하고 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새로운 디자인 도구들 (공저: 이승호)>>의 기획 단계에서 만들어 낸 독자 네 명의 퍼소나 (퍼소나 일러스트: 장재민) / ©이정주

 

 

책이 한국에서 출판되었지만, 구상은 핀란드에서 시작되었어요. 저는 박사 후 연구원으로, 공동저자 이승호 씨는 박사 연구원으로 헬싱키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한국 디자인 커뮤니티와 접할 때마다, 한국에서 사용자 경험 디자인 및 서비스 디자인에 대한 관심은 나날이 높아지지만, 그 도구들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는 사례는 매우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새로운 디자인’ 분야를 쉽게 접할 수 있는 한국어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온라인에서 구할 수 있는 간략한 버전의 ‘툴킷’을 그대로 다운로드하여 사용하는 상황이 대부분이었죠. 코디자인 워크숍*이나 프로브*뿐만 아니라 퍼소나*같이 다소 알려진 도구들도 ‘겉모습 따라 하기’ 식으로 써 보고는, 그 도구 자체의 효용성에 질문을 던지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그 ‘갈증’을 해소하고 현재 나와있는 수많은 디자인 툴킷들의 지침서 역할을 할 수 있는 ‘한국어 책’을 써보자-라는 게 집필을 시작한 계기였죠.

 

*코디자인 워크숍 Co-design Workshop: 서비스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있는 다양한 사람들을 모아, 특정 주제에 관한 워크숍을 열어 다양한 관계자들의 상호 이해를 돕고, 색다른 아이디어의 융합을 거쳐 새로운 통찰을 꾀하는 것

 

*프로브 Design Probes: 디자이너가 미리 고안한 자료 기록 도구를 사용자에게 전달하여, 외부 관찰자에게 공개하기 어려운 일상생활의 섬세한 영역과 내면의 이야기를 사용자 자신이 주체적으로 채집하게 하는 것

 

*퍼소나 Persona: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할 다양한 사용자를 실제로 관찰해서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만드는 전략적 가상의 인물

 

 

처음에 책 기획서를 쓰면서 어떤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담을까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승호 씨와 제가 생각하고 있는 주력 독자층이 조금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에 이미 입문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사람들을 주 독자층으로 생각하고 있었고, 승호 씨는 디자인에 관심은 있지만 사용자 중심 디자인이나 디자인 도구 관련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독자층으로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우리 책의 주 독자 층이 누가 될 것이냐에 따라 책의 내용이나 구성, 문체가 달라져야 하므로 그것을 뚜렷이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했고, 또 둘의 집필 스타일을 통일하는 데도 필수적이었죠. 저희가 어렴풋이 그분들의 ‘갈증’은 느끼고 있었지만, 정확히 무엇을 이미 알고 계시는지, 그리고 무엇을 더 알고 싶어 하는지를 확실히 아는 것이 중요했어요. 그래야, 그분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는 책을 쓸 수 있으니까요.

 

책의 주 독자층이 누가 될지 결정하고, 그들의 필요를 파악하고 충족시키기 위해 책을 쓰는 과정 자체가 저희에게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 과정’으로 다가왔어요. 그래서 '직접 물어보고, 니즈를 추출한 후 퍼소나를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자연스럽게 나왔고요. 인터뷰 내용을 해석할 때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을 활용할 텐데, 이를 책 4장 <해석 도구: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의 사례로 활용하자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승호 씨가 주셨어요. 보통 어피니티 다이어그램 작업은 디자이너의 프로젝트에 매우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따로 문서화하지 않거나, 보안 문제로 노출하지 않기 때문에 사례를 찾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저희가 직접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을 통해 인사이트를 추출하고 퍼소나를 만드는 과정을 매우 자세히 소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죠!

 

*어피니티 다이어그램 Affinity Diagram: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메모지 한 장 당, 한 가지의 정보나 의견을 적어 벽면 가득히 붙여놓고, 군락을 지어보고, 배열을 바꿔보며, 새로운 디자인 영감을 얻는 것

 

디자인 분야와의 친숙도 및 디자인 도구를 경험한 수준을 주요 변인으로 잡고 대학생부터 디자인 전문기업의 CEO, 디자인 전공자부터 다소 거리가 있는 전공을 가진 사람까지 인터뷰 대상 범위를 정했어요. 그리고는 그 범위에 해당하는 지인에게 부탁을 하거나, 적합한 분들을 추천받아 총 20명의 인터뷰 대상 목록을 구성하고, 그중 일곱 분을 인터뷰했어요. 인터뷰를 통해 얻은 발견점들은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을 통해 해석한 후, 최종적으로 총 4명의 퍼소나를 만들었습니다. ‘서비스 디자이너를 꿈꾸는 심리학도, 지원’, ‘서비스 디자인 자문회사 대표, 승현’, ‘예비 제품 디자이너, 지수’, ‘철학이 이는 공간 디자이너, 현진’, 네 명 중에서 ‘지원’이 1순위 퍼소나였어요.

 

책을 쓰면서, 미리 독자 퍼소나를 만들었던 것이 너무나 잘한 결정이라고 느꼈습니다. 집필 중간중간, 승호 씨와 제가 “독자들이 이 부분을 궁금해하지 않을까요?” “독자들에게 이 내용은 좀 어렵지 않을까요?”하고 고민을 할 때, 우리의 퍼소나, 지원, 승현, 지수, 현진은 저희가 결정을 하는 데 있어, 기막힌 길잡이 역할을 해 주었거든요!

 

수많은 디자인 툴킷의 홍수에서, 독자들이 디자인 도구 하나를 사용하더라도 그 기본 원리와 마인드셋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해 이 책을 썼어요. 사실, 디자인 에스노그라피 같은 도구 하나의 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요구하는 마인드셋을 기른다면 다른 어떤 도구들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 역량이 갖춰졌다고 볼 수 있거든요. 이 책이 그런 길잡이 역할을 해 준다면, 저희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기쁜 일이죠. 책의 케이스 스터디를 업데이트한 영문 버전도 기획 중입니다.

 

 

예전에는 디자이너의 직관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신비로운 영역이니, 좋은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는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공부하고, 끊임없이 모방해봐야 한다는 보편적인 인식이 있었습니다. 서비스/경험 디자인이 발전하면서, 디자인의 지향점이 다양해졌지만, 대신 그에 걸맞은 새로운 디자인 도구들을 익혀야 하는 디자이너들의 피로도는 더 증가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하면, 서비스 디자인 도구들이 디자이너에게 부담스럽지 않고, 간편한 툴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요?

 

 

서비스 디자인 도구들을 ‘도구’로 볼 것이냐 아니면 ‘감각 혹은 마인드셋’으로 볼 것이냐를 고민하면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도구에 대해 박사 연구를 하고 책을 쓰긴 했지만, 결국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이런 많은 툴들은 결국 디자이너 스스로의 공감 능력과 통찰력을 기르기 위한 연습 도구에 불과하고 궁극적으로는 툴들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박사 논문 제목도 “Against Method”(디자인 도구들에 반대하다)였어요!

 

저는 디자인 도구를 활용할 때 ‘민감성(sensitivity)’라는 단어를 즐겨 강조하는데요, 이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는 관찰자로서 자기 자신에 대한 민감성, 또 다른 하나는 관찰하는 대상에 대한 민감성.

 

한두 가지의 도구들, 예를 들어 동행 관찰*이나 프로브만 사용하더라도 그 도구가 어떻게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을 이해하게 하고, 과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게 해 주는지 민감하게 스스로의 변화를 따라갔으면 좋겠어요. 그런 경험을 한다면 몇 가지의 도구들만 활용해 보고도, 경험 디자인이나 서비스 디자인이 요구하는 ‘사용자 혹은 디자인 대상에 대 한 민감성’을 기를 수 있습니다.

 

*동행 관찰Shadowing: 디자이너나 에스노그라퍼가 정해진 시간 동안, 사용자를 동행하며 그들의 행동을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디자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새로운 도구를 익히는 과정은 세련된 디자인 감각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좋은 디자인 작품을 보고, 모방해 보고, 내 작품으로 재해석해 보는 과정과 결국에는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디자인하는 대상’을 위한 감각을 익히는 것이니까요. 그 대상이 오뜨 쿠띄르가 됐든, 응급실 의자에 쪼그려 앉아 잠을 청하는 환자의 가족이 됐든.

 

100가지의 도구가 나와 있다고 해서 100가지 도구를 다 알아야 하고 사용해야 할 필요는 결코 없습니다. 하나를 해도 앞에서 말한 ‘민감성’ 스위치를 켜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론, 처음에는 이런 도구들을 사용하는 것이 어색하거나, 관찰에서 통찰로 잘 이어지지 않는 등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운동을 배울 때처럼 이건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에요. ‘이런 도구들, 해봐도 얻는 게 없네’라고 포기하지 말고, ‘디자인 감각’을 익힌다고 생각하고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본인에게 ‘간편한 툴’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결국 도구는 도구일 뿐, 정보를 해석하고 디자인하는 사람은 디자이너 자신이니까요.

 

 


외국인 가사 도우미 고용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학생들이 진행한 사전 맵핑 / ©이정주

 

 

디자이너들이 창조적인 직관과 혼동하기 쉬운 자신들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프로젝트 전에 미리 적어보는 ‘자가 에스노그라피’나 프로젝트 시작 전 관계자들이 특정 주제에 관해 자신들의 생각을 공유하고 정리해 보는 ‘사전 맵핑’ 등을 추천하시는데, 그런 방법들이 디자이너들의 직관력을 더욱 날카롭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될까요?

 

 

네, 도움이 됩니다. ‘자가 에스노그라피’나 ‘사전 맵핑’은 앞에서 이야기한 ‘민감성 기르기’의 일환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주어진 디자인 문제 혹은 디자인 대상에 대해 내가 무엇을 알고 (있다고 믿고) 있는지, 어떤 의견이나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아무런 제약 없이 써보는 거죠. 흔히 이야기하는 ‘의식의 흐름’대로 써 본다는 점에서, ‘마인드 맵’ 형식을 권하기도 합니다.

 

‘자가 에스노그라피’, ‘사전 맵핑’이라니 이름이 거창한데, 사실은 일상에서 익숙한 방법으로 할 수도 있어요. 그냥 수첩을 꺼내 들고 낙서하듯 써 본다던지, 팀 멤버와 모여 앉아 수다 떨듯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핵심어를 테이블 위에 적어보는 방식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결과물을 디자인 과정 내내 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에요. 책상 위에 붙여두거나, 디자인 스튜디오 벽에 붙여두는 방식으로요.

 

사용자 관찰을 통해 얻게 되는 발견점들을 포스트잇에 적어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을 만들 때, 프로젝트 시작 때 만든 ‘사전 맵핑’에 열거된 내용들과 비교해보면, 우리가 어떤 새로운 발견점을 얻었는지, 아니면 이미 알고 있던 굴레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지,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을 아직 모르는 것은 아닌지 등을 체크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 방법은 흔히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대상을 위해 디자인할 때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나의 선입견을 드러내고 깨부 수는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독거노인이나 지체 장애인을 위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할 때, 디자이너들은 종종 ‘선의의 동정심’을 가지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을 ‘도움이 필요한 약자’로 보고 시작하기 때문에, 비장애자들도 당면할 수 있는 문제들을 장애인들 일상의 큰 문제로 부풀려 생각하고, 거기에 푹 빠져 디자인하는 경우가 있죠. ‘자가 에스노그라피’같은 방법을 통해 ‘아, 내가 그들을 이런 시선으로 보고 있구나’라고 깨닫고 시작하면, 사용자 관찰을 하고 발견점을 찾는 과정에서 본인의 해석이 원래 선입견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방향의 깨달음이 있었는지 파악할 수 있죠. 이게 바로 우리가 이야기하는 ‘통찰’이고요.

 

 

‘코디자인 워크숍’의 경우, 잘 알려진 회사에 적을 두고 있지 않으면, 사실상 다양한 관계자를 섭외하는 것에서부터 난관에 부딪히기 마련입니다. 어떤 경로로 사람들을 섭외해야 하는지, 바쁜 사람들이 정말 시간을 내서 참여를 해줄지, 일면식 없는 사람들을 모아 코디자인 워크숍을 했을 때, 프로젝트에 도움이 될만한 인사이트를 건질 수 있올지, 참여해 준 사람들에게 어떤 보상을 해줘야 할지 막막할 수 있거든요. 작은 조직에서 일하는 실무자들이나 학생들도 코디자인 워크숍을 기획하고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우리가 접하는 코디자인 워크숍 사례들 중 대규모로 몇 차례에 걸쳐 진행되는 워크숍은 사실 대부분 산학 프로젝트이거나 몇 안 되는 대규모 디자인 전문기업의 사례들이긴 하죠. 작은 조직에서 그런 규모의 코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하기에는 어느 정도 현실적인 제약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작은 조직들은 또 그들에게 가능한 규모로 코디자인 워크숍을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희 학생들도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 과목에서 다양한 형태로 코 디자인 워크숍을 하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에서 코디자인 워크숍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이해하고 있다면, 규모와 형태를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최종 사용자들의 고충과 요구사항을 디자인 과정에 반영하는 게 목적이라면, 최종 사용자 몇 명을 모아, 규모는 작지만 심도 있는 워크숍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관계자들의 상호 이해를 돕는 것이 목표인데, 그들을 동시에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이 자원 및 진행 면에서 무리라면, 그룹을 나누어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각 그룹에서 얻은 발견점을 효과적으로 정리해 서로 다른 그룹에 전달하고 공감을 도모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교육부가 초등학교와 학부모들 사이 효과적 소통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 중인데, 교육부 공무원, 학교 경영진, 교사들, 학부모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이 무리라면, 학부모들과 먼저 코디자인 워크숍을 진행한 후, 거기서 얻게 된 그들의 고충과 아이디어를 퍼소나나 비디오 시나리오, 아이디어 포스터 등으로 잘 정리한 후, 학교 직원 및 공무원들이 모인 워크숍에 그 결과물을 전달하고, 그들이 학부모의 경험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 거죠. 이렇게 작더라도 유의미한 통찰을 생산한 뒤, 이를 참여자들과 나누고, 그들의 참여를 부탁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게 한다면, 특별한 금전적 보상이 없더라도 프로젝트 자체에 의미를 느끼고 참여해 주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처음 코디자인을 한다면 규모에 욕심을 내지 말고 효율적인 단위로 쪼개어 단계적으로 접근하기를 권합니다.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을 모아 진행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자신이 없다면, 두세 명씩 나누어해 본다던가,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데 비교적으로 무리가 없는 학생, 혹은 전문가를 대상으로 시작하는 것도 효과적입니다. 한두 시간의 워크숍도 디자이너가 목표를 뚜렷이 이해하고 질문을 디자인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싱가포르 노동부와 진행한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에서의 발견점과 디자인 결과물을 전달하기 위해 연 전시회 (2014)  / ©이정주

 

 

서비스 디자인이 최근 들어 각광을 받고 있지만, 디자인 회사들에서 서비스 디자이너를 채용하면서 다른 디자인 자격 요건들도 만족시키기를 원할 때가 많습니다. 서비스 디자인 과정이 클라이언트들에게 ‘우리 이렇게 열심히 일해요’ 또는, ‘우린 이런 것도 할 수 있어요’,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치부될 때도 있고요. 싱가포르의 경우, 상황이 어떤가요? 한국에서 서비스 디자이너로 취업을 준비 중인 디자인 전공 학생들에게 해주실 수 있는 조언이 있으신가요?

 

그런 상황은 사실 지역과 관계없이 흔하지 않게 관찰되는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직의 ‘사용자 중심적 프로세스’ 또는 ‘트렌디함’을 강조하기 위해 ‘서비스 디자인’을 포트폴리오로 넣는 경우를 쉽지 않게 보죠. 클라이언트는 사실 서비스 디자인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건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지만요.

 

싱가포르의 디자이너 채용 공고들을 보면, UX 디자이너는 어느 정도의 코딩 지식을 갖춘, 디지털 플랫폼 혹은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고, 서비스 디자이너는 어느 정도의 ‘전략가’ 역할을 하는 사람을 일컬어요. 특히, 규모가 있는 회사의 서비스 디자이너들은 프로젝트에서의 전략뿐만 아니라, 조직 내 다양한 부서에 ‘고객 중심적 접근 방법’을 가르치고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요. 싱가포르 대표 은행인 DBS는 이를 저니 싱킹*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저니 싱킹Journey Thinking: 일련의 사용자 경험을 내러티브와 흐름이 있는 여정으로 생각하는 관점

 

사실, 유럽이나 몇몇 대형 글로벌 디자인 전문기업을 제외하고는 ‘서비스 디자이너’라는 직함으로 채용을 하는 곳은 아직 많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분명, 매년 급속히 늘고 있기는 하지만,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부상하고 교육 기관에서 관련 과정을 개설한 것에 비해, 아직 고용 시장의 수용력은 부족한 상황이죠.

 

지금 서비스 디자이너로 취업을 준비 중이라면, 스스로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해 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본인이 ‘새로운 분야를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열정이 있는가 (Capability to Learn & Unlearn)’하는 것입니다. 디자인 전문기업은 물론이고, 은행 혹은 병원 같이 도메인이 확실한 분야에서도, 최근 새로운 기술 및 서비스 모델 개발 등으로 인해 항상 새로운 영역에 대한 지식이 요구됩니다. 서비스 디자이너는 분야를 막론한 다양한 프로젝트에 투입되기 때문에, 새로운 프로젝트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지식, 예를 들어, 금융, 공공 서비스, 운송 등에 대한 지식을 익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흥미를 느껴야 합니다.

 

사실 서비스 디자이너라는 직업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프로젝트를 하며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도를 넓힐 수 있는 것은 디자이너의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작년에, 싱가포르의 항만 공사 (Port of Authority Singapore)와 함께 항구 자동화를 위한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를 했었는데, 겉으로만 보던 항구와 큰 선박들이 실제로 어떻게 운영되는 건지 알아가는 과정은 매우 흥분되는 경험이었어요. 물론, 복잡하기 그지없는 항구 운영 체계 와 법규 등을 이해하는 데는 인내심이 필요했지만요.

 

 


싱가포르 항만 공사와 진행한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 중, 관제 센터 현장 관찰 (2018)  / ©이정주

 

 

두 번째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들을 연결해 주는 것에 흥미가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서비스 디자인 프로젝트는 이해 관계자가 꽤 다양하고 많아요. 최종 고객부터, 클라이언트 회사의 매니지먼트, 고객 응대 직원들, 클라이언트 회사가 협력하는 다른 조직들, 그리고 규제를 담당하는 조직 등등. 각기 다른 경험과 요구 사항을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연결시킬 결합점을 찾는 것은 서비스 디자이너의 핵심 역량입니다. 그러려면,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데 본질적인 흥미가 있는 게 큰 도움이 됩니다.

 

한 가지 첨부하자면, ‘유연한 태도’를 언급하고 싶어요. 아주 가끔, “저는 서비스 디자인을 하는 서비스 디자이너예요.” 하고 자신의 영역에 분명한 선을 긋고, 그 주변의 비슷하지만 다른 영역, 예를 들어 UX 디자인이나 공공 디자인 등과 혼용되는 부분에 경계적 태도를 보이는 분들을 본 적이 있어요. ‘서비스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역할과 업무의 특성을 정확히 정의하고 알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또 ‘서비스 디자인’이라는 영역, 혹은 ‘서비스 디자이너’라는 직함에 지나치게 매달리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앞서, 웹 디자인, UX 디자인의 유행에서 보았듯이 ‘서비스 디자인’도 계속 변화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다른 이름으로 불릴 것이니까요.

 

 

서비스 디자인 도구들을 실제 업무에서 활용해보고 싶지만, 시간이나 예산의 제약으로, 또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동료들의 반응이 시큰둥해서 시작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초심자가 부담 없이 소규모 프로젝트에서 적용할 수 있을 법한 도구로 어떤 것을 추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간단한 이미지 카드를 활용해 고객 두세 명과 일대일 인터뷰를 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들이 기존 서비스를 어떻게 경험하고 있는지 그들의 고충이나 목소리가 확실히 드러나는 인터뷰요. 인터뷰 참여자가 자신의 경험이나 서비스 상황을 상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미지로 구성된 이미지 카드를 주고, 그것들을 넘겨 보면서 경험을 상기하거나, 늘어 놓으면서 경험을 맵핑할 수 있어요. 인터뷰는 가능한 한 고객의 현장에서 하는 것이 제일 좋구요. 그리고 그 결과물을 단순한 형태의 ‘고객 여정 지도’로 만들어 동료와 상사에게 보여주고 그들을 마음을 얻으세요. 서비스에 대해 고객이 한 말 그대로를 고객 여정 지도에 함께 맵핑하여, ‘실제 우리 고객들의 목소리’ 임을 강조합니다.

 

“고객 두세 명의 말을 어떻게 믿냐, 한 백 명은 리서치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는 상사가 있을 겁니다. 실제 디자인 프로젝트에서 그런 말을 들을 때 저는, “백 명에 대한 리서치는 우리에게 평균적인 불만사항이나 평균적인 만족도만 알려줄 겁니다. 그 ‘평균’은 실제로는 그 누구의 진짜 경험도 아니에요. 하지만 이 두세 명의 경험은 실제 우리 고객이 직접 경험한 ‘진실’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평균은 누군가의 진짜 경험이 아니다. 진실은 깊은 소통을 통해 알게 된 두세 명의 진짜 경험에 있다.’라는 이정주 교수의 말에는 정성적인 영역인 ‘사용자 경험’을 정량적으로 재단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우리네 관점을 새롭게 하는 울림이 있다. <<새로운 디자인 도구들 (공저: 이승호)>>은 저자들이 책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독자들의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여, 실제 서비스 / 경험 디자인 프로젝트 사례와 국내외 인지도 있는 전문가들의 조언, 실제 프로젝트에서 발생 할 수 있는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과 이에 대한 예방법과 대처법을 두루 전달하고 있어, 서비스 / 경험 디자인 초심자부 터, 디자인 실무자와 경영자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뼈 속까지 실용서’라는 인상을 준다. 작은 디자인 프로젝트 하나에도 때때로 간과하기 쉽거나, 매몰되기 쉬운 디테일과 예상하지 못한 변수들이 숨어 있을 수 있다. 사용자를 면밀히 관찰하고 소통하면서 얻는 그들의 경험에 대한 깊은 이해는 프로젝트의 방향을 바로 잡고,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한 신념을 다지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리포터_차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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