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들이 가장 많이 본 디자인 뉴스
국내 리포트
페이스북 아이콘 트위터 아이콘 카카오 아이콘 인쇄 아이콘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 시대를 관통하는 그의 시선

무표정한 도시의 단상을 이렇게나 덤덤하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작가가 또 있을까. 전시를 보는 내내 적막한 고독이 배어나는 작품들을 보면서 도시 속 공허한 삶이 나 혼자만의 감정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큰 위안을 받는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2023년 4월 20일부터 8월 20일(매주 월요일 휴관)까지《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 전시가 열리고 있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 가로형 배너 이미지,  출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에 관해 4,000여 점 이상의 독보적인 자산을 소장한 뉴욕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과 공동 기획하여 무려 270여 점의 작품과 자료를 선보인다. 아카이브 전시라고 불러도 될 만큼 작가의 전 일생에 관한 상세한 자료와 정보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다.
전시장은 총 3개 층, 7개의 섹션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작가의 일생에 따른 연대기적 구성이 아닌 파리, 뉴욕, 뉴잉글랜드 일대, 케이프 코드 등 작가의 예술적 지평을 넓혀 간 이동 장소를 따라간다.
“위대한 예술이란 예술가의 내면의 삶을 밖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호퍼의 말처럼, 그의 작품을 따라 거닐다 보면 일상을 바라보는 그의 다양한 생각과 감정들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무한한 동질감을 가지게 된다. 무심코 지나가는 일상의 변화와 사물들이 그의 눈을 통해 화폭으로 구현된 세계를 바라보면 내가 놓치고 못 봤던 것들이 색다른 시각으로 다가온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뉴욕 휘트니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버지니아미술관, 톨레도미술관 소장품들을 대거 대여하여 전관에 다채로운 그의 화폭들을 펼쳐 놓았다. 어느 작품 하나 소홀히 지나칠 수 없는 그의 발자취를 보면서 작품의 특징을 살펴보고, 이와 더불어 그의 작품들을 하나의 전시장에 녹여내기 위한 작품 이면에 숨겨진 디자인적인 노력을 찾아보고자 한다.

1  수많은 군중 속 고독한 개인의 단상
에드워드 호퍼가 활동한 시대 배경을 알면 동시대 작가들의 그림과 그가 바라보고 만들어 낸 시선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다. 호퍼가 활발히 활동하던 20세기 초 중반은 급속한 산업화와 기계화로 물질적 풍요와 번영을 얻은 시기다. 산업 대국이자 소비 대국인 미국은 당시 물질 만능주의, 빈부 격차, 자연과의 단절, 기계화 등으로 인해 인간에 대한 회의가 밀려온 때이기도 하다. 경제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사람들은 삶에 대한 불안감과 허무주의에 휩싸였다. 수많은 군중 속에서 홀로 남겨진 듯 무기력해 보이는 무표정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투영된다.

화려한 도시 속 홀로 남겨진 듯 무기력해 보이는 무표정의 사람들 1|좌: <일요일>, 1926 |우: <자동판매기>, 1927


화려한 도시 속 홀로 남겨진 듯 무기력해 보이는 무표정의 사람들 2|좌: <브루클린의 방>, 1932 |우: <뉴욕의 방>, 1932

2  강렬한 빛과 그림자의 대비를 통한 극적인 화면 구성
그의 작품 몇 점만 봐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은 강렬한 빛과 그림자의 대비이다. 어린 시절부터 즐기던 드로잉처럼 선이 강조되는 판화 기법 에칭을 1915년에 시도하는데 그 이후로 1928년까지 뉴욕의 모습을 담은 약 70점의 판화를 그리면서 극적인 대비의 효과가 드러나는 작품의 초석을 마련하게 된다. 흑과 백으로만 표현되는 다수의 에칭판화 작업을 하면서 빛과 그림자에 대한 연구가 깊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에칭 판화 작업
 좌: <밤의 그림자>, 1921 |우: <공원의 밤>, 1921


뉴욕의 풍경과 일상은 자연스럽게 관찰의 대상이자 작업의 주된 소재였는데, 조명이 드리워지며 생기는 빛과 그림자, 빈 어둠의 공간이 만들어 내는 신비하면서도 묘한 분위기를 작품 속에서 두드러지게 발견할 수 있다. 매끈하게 정제된 빛과 어둠이 만들어 낸 여백의 공간에서 숨 막힐 듯 조용한 일상과 그 일상 속 다양한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강렬한 빛에 의한 그림자 대비가 돋보이는 작품 |좌: <도시의 지붕들>, 1932 |우: <이층에 내리는 햇빛>, 1960


3  영화광 에드워드 호퍼가 표현한 남다른 시선과 극적인 구도

영화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에드워드 호퍼와 조세핀 부인은 극장을 자주 찾았고 그 속에서 작업 소재나 구성을 위한 수많은 영감을 받기도 했다. 호퍼는 <서클 극장(The Circle Theatre, 1936)>, <셰리든 극장(Sheridan Theatre, 1937)>, <뉴욕 영화(New York Movie, 1939)> 등의 작품에 영화관의 전경을 담고 있다.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의 모습이나 무대를 배경으로 그리는 일반적인 그림에 비해, 호퍼는 남다른 시선으로 영화관 화면을 구성했다. 대상의 전체가 아닌 일부만 드러내어 그림 속의 여백과 빈틈을 느끼게 만드는데, 이러한 방식은 보는 관람객에게 다양한 이야기와 궁금증을 만들어 낸다. 그림 속 상황은 굉장히 정적이고 조용하며 묵직한 고요함이 느껴지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구도로 인해 불안정함과 긴장감도 함께 느껴진다. 

 


영화관을 배경으로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 본 인물들  좌: <셰리든 극장>, 1937 |우: <뉴욕 영화>, 1939


4  아쉽게도 만나지 못한 그의 대표작들

작년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뉴욕》이라는 타이틀로 호퍼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이 회고전에 뒤이은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는 아쉽게도 그의 대표작 몇 점이 빠져있다. 대신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1942) 원화를 대신한 드로잉 습작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그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고민했던 수많은 드로잉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작품들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결과가 아님을 그가 남긴 무수한 습작을 통해 알 수 있다.  

 


목탄과 콩테를 사용한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1942 습작 드로잉과 원화  

5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드러나는 전시 디자인
전시장 곳곳에서 무심한 듯 세심하게 정돈된 공간 디자인을 엿볼 수 있다. 2, 3층에서는 전체적으로 톤다운 된 차분한 올리브그린 색감으로 천장 라인을 정리해서 시선이 오롯이 흰 벽에 걸린 작품으로만 갈 수 있게 배려했다. 그의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편안한 그린 색상이 공간을 아주 차분하게 정리해 주는 느낌이다. 

2,3F 전시장 스케치|사진: 홍철기  © 2023, 서울시립미술관

1층으로 내려오면 다소 어두운 공간에 뉴욕 휘트니 미술관의 소장품과 산본 호퍼 아카이브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그의 일생과 주요한 사건을 연대기 순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커다란 벽이 눈에 띈다. 주요한 사건들을 그의 일생과 더불어 아주 간결하게 정리했다. 그 외에도 각종 광고 삽화와 잡지 표지 일러스트, 호퍼 부부의 취미생활, 다큐멘터리, 4권의 장부 등을 풍성하게 펼쳐 놓았다. 중앙의 커다란 쇼케이스에 생전 삶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편지글, 소형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데, 너른 공간에 시원하게 배치하여 정보의 양이 부담스럽지 않다. 또한 4권의 장부 중 2권의 장부를 대형 모니터에서 상세히 볼 수 있게 연출해 놓아 관람객에게 그의 작업 세계를 좀 더 면밀히 바라볼 수 있도록 친절히 배치해 두었다.


각종 광고 삽화와 잡지 표지 디자인, 다큐멘터리 등을 풍성하게 펼쳐놓은 1층 전시 스케치|사진: 홍철기  © 2023, 서울시립미술관

1층을 제외한 모든 작품은 사진 촬영이 불가하지만 제일 마지막 공간에서 상영하고 있는「호퍼: 아메리칸 러브스토리」(2022)에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그의 일생을 작품과 더불어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충분한 영상이 있기 때문이다. 풍성하고 다채로운 자료와 작품들을 조용히 뒷받침하면서 그의 작품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끔 배려한 전시 디자인도 주목할 만하다.
 

회색의 차분한 벽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그래픽 디자인과 작가의 사진이 담긴 쇼케이스와 캡션 © 류인혜

요즘은 전시를 보고 난 후 관람객들에게 기억이 될 만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트샵에서 전시 연계 상품(포스터, 엽서, 작품 이미지를 활용한 굿즈들)을 구입하거나 작품 도록을 구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람객이 무언가를 구입하기에 앞서 미술관, 박물관에서 제공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에서는 작가의 말년작 중 하나인 <햇빛 속의 여인>(1961) 작품 속의 인물이 되어보는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작가는 창문 앞으로 난 강렬한 빛줄기 앞에 선 여인, 아내 조세핀의 젊은 시절 모습을 그렸다. 그의 작품 속 또 다른 인물이 되어 그 빛을 느껴보는 주인공이 되어보길 바란다.    


<햇빛 속의 여인>, 1961 |전시연계 체험코너 © 류인혜
류인혜(국내)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실내디자인 석사 졸업
숙명여자대학교 디자인학부 실내디자인 졸업
(현) 삼성문화재단 리움미술관 책임
·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영리를 목적으로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 본 콘텐츠를 블로그, 개인 홈페이지 등에 게재 시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외부필자에 의해 제공된 콘텐츠의 내용은 designdb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 시대를 관통하는 그의 시선"의 경우,
공공누리"출처표시+상업적 이용금지+변경금지" 조건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사진, 이미지, 일러스트, 동영상 등의 일부 자료는
발행기관이 저작권 전부를 갖고 있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자유롭게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당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목록 버튼 이전 버튼 다음 버튼
최초 3개의 게시물은 임시로 내용 조회가 가능하며, 이후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 임시조회 게시글 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