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살거나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제주 올레길 중 어느 한 코스는 다녀왔을 것이다. 제주 올레길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산책코스다.
제주 올레길은 소설가이자 언론인인 서명숙이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얻어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설립해 추진한 트레킹 코스이다.
제주도에서 걷기 좋은 길을 코스별로 만들었고, 2007년부터 순차적으로 코스를 개장해서 총 21개 코스로 제주도를 한 바퀴 연결하는 길이 완성되어 총 420km가 된다. 매일 열심히 걷는다면 약 3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제주 올레길은 자연경관과 제주의 일상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지난 한 달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오면서 역사적 의미도 있지만 “브랜딩을 잘했다"고 생각했고, 그런 의미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받은 제주올레길과 무엇이 다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길의 모습]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 포르투갈, 프랑스 등 각 지역에서 출발해서 특정 길을 거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에 이르는 길이다. 제주 올레길은 제주도 한 바퀴를 도는 총 21개 코스가 있어 시작점이나 최종 목적지가 없이 순환하는 코스다.
[길의 탄생]
역사적으로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11세기부터 성 야고보의 무덤을 찾기 위해 순례자들이 걷기 시작해서 알려진 길인 반면 제주 올레길은 개인이 제주도의 걷기 좋은 코스를 개발해서 제공하게 된 길이다.
[코스의 종류]
산티아고 순례길은 목적지가 하나로 같으며, 프랑스 길, 포르투갈 길, 북쪽 길, 스페인 내륙 길 등 수많은 길이 존재하고, 그 중 앞서 언급한 4개 길이 가장 유명하고 인기가 많다. 또한, 역사가 깊은 길인만큼 걷는 길마다 중세 유럽의 역사적 건축물이나 교회와 성당을 자주 만날 수 있다. 반면 제주 올레길은 목적지가 있지 않은 순환형 코스인 만큼 걷는 사람마다 선택하기 나름의 코스를 계획할 수 있고, 가는 길마다 자연경관과 제주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걷는 목적]
산티아고 순례길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만큼 목적이 있는 사람들도 있다. 종교적 의미로 성 야고보의 무덤을 찾기 위해, 순례길을 걸었던 예전 순례자의 마음을 뒤따르기 위해, 중세 유럽의 문화와 역사를 느끼고 보러 가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혹은 어떠한 이유도 없이 여행으로써 찾기도 한다. 제주 올레길도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텐데, 주로 자연경관을 즐기고 걷는 즐거움과 여유를 느끼고, 제주의 모습을 몸으로 느끼기 위해 찾는다.
순례길을 걷다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의 오랜 역사와 인기를 실감할 수 있을 만큼 시각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잘 디자인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길 안내 표지판과 숙소, 순례자에게 제공하는 각종 정보를 모은 서비스 등 상세하게 올레길과 비교해 본다.
[사전 준비] 어디부터 시작할 것인가?
(왼쪽부터) 프랑스 길 상세 루트, 포르투갈 길 상세 루트, 유럽 전체에 퍼져있는 순례길 지도 1.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Ruta_do_Cami%C3%B1o_de_Santiago_franc%C3%A9s.png
2.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minos_Santiago_actuales_Portugal.svg
3.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Ways_of_St._James_in_Europe.png
순례길 루트 결정에 도움이 되는 계산기
이미지 출처: https://followthecamino.com/en/camino-de-santiago-routes
올레길도 웹 검색을 하면 코스 지도를 찾기 쉽고, 네이버 지도 앱이나 카카오 지도 앱을 켜면 제주 올레길 코스가 표기되기도 해서 비교적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 또, 순환하는 길이기 때문에 시작점을 자신이 원하는 위치에서, 원하는 방향(시계 또는 반 시계)으로 떠나면 된다.
제주 올레길 코스 안내지도
이미지 출처: https://noproblemyourlife.tistory.com/2095
[여권과 스탬프]
산티아고 순례길은 로컬 투어리스트 오피스 또는 온라인으로 순례자 여권(credential이라고 부른다)을 살 수 있다. 또, 여권과 함께 순례자를 표시하는 조개 목걸이를 함께 사기도 한다. 이 두 개를 합쳐 1.5유로 (지역별로 상이할 수 있음). 판매점에서 여권에 순례자 신원을 확인하고 각 상세 정보를 적어 인증이 시작된다. 웹으로도 신청하여 혹시나 모를 사고에 대비할 수 있다. 또, 이 여권은 숙소에서 순례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용도로 사용되어 순례자에게는 필수다.
이 여권에 스탬프는 거쳐 가는 도시마다 음식점, 숙소, 안내센터 등 많은 곳에서 각각 스탬프를 자체 제작하여 그들의 특징을 담은 모양으로 찍어주어 보는 재미가 있다. 또, 매일 숙소에 도착할 때마다 하루에 두 곳 이상의 스탬프를 찍어야 한다는 암묵적 약속이 있다. (스탬프마다 날짜를 써주고, 이를 통해 오늘 많이 걸었나 확인하는 용도라고 하나, 실제로 그렇게 “검사"하지는 않는다.)
도시에 음식점, 숙소, 안내센터마다 특징을 담은 고유의 스탬프가 있어 재미가 있다.
이 여권에 스탬프를 찍어서 최종 목적지인 Santiago de Compostela에 도착하면, 스탬프와 여정을 보고 100km 이상 걸어온 순례자에게는 compostela라는 인증서를 발급해 준다.
순례자 표식인 조개를 가방에 메달고 다니며, 순례길을 끝나면 순례자 여권의 스탬프를 확인해 인증서를 발급한다. ©계윤선
올레길 또한 여권을 살 수 있으며, limited edition으로 각종 용품과 숙박권 한 장을 함께한 여권도 존재한다. 가격은 2만 원으로 높은 편이다. 산티아고에 비해 규모가 작고 (방문자 수가 다르므로) 사단법인에서 운영하다 보니 사설 운영비에 이용된다고 한다.
이 여권에는 각 코스의 시작과 끝점 길 위에 스탬프가 구비되어 있어 직접 찍으면 된다. 그래서 제주올레가 자체 제작한 동일한 스탬프가 찍힌다.
코스별로 스탬프를 모두 찍어 완성하면 완주 메달을 받을 수 있다. (3개 코스 누락까지 인정)
제주 올레길 여권과, 여권 내 스탬프 모습
※ 이미지 출처
1. https://mydramatic.tistory.com/m/133
2. https://m.khan.co.kr/life/travel/article/201001051736085#c2b
[길 표시 방법]
산티아고 순례길은 노란색 조개 모양이 대표하는 로그이자 마크다. 그래서 길 가는 곳곳에 조개 모양이나, 노란색 화살표가 있다. 이 화살표는 꽤 자주 표기되어 있어 하루 이틀 걷다 보면 지도나 앱 없이도 길을 찾기 굉장히 쉽다. 이 화살표는 연석에 크게 적어 표시해 두는 지역도 있고, 어느 집 돌담이나 도로 위, 고가도로 다리 위, 벽 등 곳곳에 노란색 스프레이로 표시해두는 지역도 있다. 이는 지자체별로 관리하기에 지역마다, 소도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순례자에게는 모두 동일한 징표의 역할을 한다.
여러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길안내 표시 ©계윤선
- 올레길 표식은 파란색과 주황색 나무 화살표나 리본이다. 또, 노면이나 돌담 또는 전봇대에도 그려져 있기도 하다. 특징은 두 가지 색이 있다는 점인데, 순환 코스인 만큼 파란색은 기본 진행 방향, 주황색은 반대 방향을 의미한다. 또, 노란색 화살표가 곳곳에 있으며 이는 휠체어 구간의 우회로를 뜻한다. 혹은 지도 서비스에 능숙한 한국인 국내 여행자라면 여권의 지도나 지도 앱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있다.
[숙소]
순례자가 도움을 받을수 있는 각종 순례길 관련 서비스 앱들 (이미지 출처: 각 앱 서비스 제공)
순례자가 묵는 숙소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데, 순례자 여권에 스탬프가 찍힌 경우 받아주는 알베르게, 개인실이 있거나 조금 더 시설이 좋은 도미토리형 호스텔, 호텔은 아니지만 개인실과 독립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는 파사나가 있다. 보통 알베르게에 묵게 되며, 이들은 2층 침대 여러 개가 배치된 하나의 방에서 함께 생활한다. 이 알베르게는 산티아고 순례자 협회 및 기관에서 지원하는 공립이 있고, 개인이 운영하는 사립 시설이 있어 금액과 시설의 차이가 있다. 즉, 운영하는 주최에 따라 다르지만 모두 “순례자"만을 위한 숙소가 존재한다. 그리고 도시마다, 운영하는 주최마다 각기 다른 특징이 존재한다. 수도원을 개조해서 만든 알베르게를 경험할 수도 있고, 순례길을 여러 차례 다녀온 순례자가 경험을 바탕으로 문을 연 곳에 가면 많은 정보와 좋은 복지시설을 누릴 수도 있어 상업적이라는 느낌을 덜 받게 된다. 반면에 그만큼 시설의 체계가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으나, 수용 규모가 큰 알베르게에는 그만큼 단체를 위한 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곳도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숙소에서는 숙소 별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다음 목적지까지 순례자의 짐을 운반해 주는 “동키 서비스"가 있다. 무거운 생활 짐을 메고 몇 주간의 여정이 고행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러 알베르게에 묵다보면 다양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계윤선
[음식]
순례자는 순례길에서 일종의 혜택이 있다. 누가 봐도 순례자를 알 수 있는 모습이 대부분이기에, 곳곳의 식당에는 순례자 메뉴 (menu de peregrino)가 존재한다. 전채요리 또는 스프, 메인메뉴, 커피와 음료로 구성되어 있어 영양을 충분히 챙길 수 있으면서 가격도 합리적이다. 또 현지 로컬푸드를 맛볼 기회도 많다.
제주 올레길은 제주도 고유의 음식을 맛볼 기회가 주어진다. 다만, 제주도는 활발한 관광지이다 보니 관광객을 타겟으로 한 음식점이 많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역사가 오래되고, 세계적인 규모인 만큼 제주 올레길보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더 많은 정보와 함께 자연스럽게 서비스가 생겨났다. 올레길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모티브를 받아 개인이 일궈낸 곳으로 아기자기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만큼 방문객들이 느끼는 것들, 즉 브랜딩에서는 차이가 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객이라는 점, 힐링을 위한 여행이라는 점, 걷는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곳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기사에 따르면 2011년에는 일본 규슈관광추진기구와 업무협약을 통해 제주 올레 브랜드를 수출해서 규슈올레 4개 코스가 개장했다고 하며, 2021년에는 한-스페인 관광산업 원탁회의에서 산티아고 순례길과 제주 올레길의 1km 내외 특정 구간에 상호 상징구간을 만들기로 논의했다고 하니, 제주 올레길도 굳건한 브랜드가 생성되어 자리 잡길 기대해 본다.
계윤선(국내)
yoonsunkye@naver.com
한국과학기술원 미래전략대학원 지식재산 박사 수료
한국과학기술원 산업디자인 석사 졸업
(현) 현대자동차 AI 연구소 서비스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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