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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볼과 미메시스 그리고 시뮬라시옹

“... 눈이 멀어 아래를 못 보니, 그저 허공이네 그려.”
영화 ‘왕의 남자’ 마지막 장면에서 장생이 외줄타기를 할 때 내뱉는 독백입니다. 자못 비장한 장면이죠. 연산군과 녹수는 자포자기 한 상태에서 쿠데타 군을 기다리고, 장생과 공길은 마지막으로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며 외줄을 탑니다.
하지만, 저 같이 약간 삐딱하게 따져보는 사람들은 이 장면이 조금은 안 어울린다라는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생과 공길이 외줄을 탔던 것은 영화 초반, 한양에 올라가기 이전이었지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왕을 가지고 놀 때(?)에는 마당극만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갑니다. 눈이 멀어 광대패에 들어가고, 공길과의 신명을 즐기고, 애증을 느꼈다고 허탄하게 말하며, 자신의 인생과 허공을 동일시하고, 자신의 삶이 마치 외줄타기 인생이었다는 듯이 이야기 하는 장면이 감동적이긴 하지만, 극의 흐름을 따지면 필연적인 혹은 운명적인 대사는 아니었죠.
그래도 이해는 됩니다. 공감할 수밖에 없죠. 마치 영화 초반 한양을 가기 전에 공길을 사이에 두고 벌이는 극중 인물들의 관계나 행동들, 놀이패의 우두머리를 죽이는 공길도 마찬가지로 필연성은 떨어지지만 오히려 극의 빠른 전개를 위해서는 더 없이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한국영화가 유럽영화처럼 꼬치꼬치 따질 필요도 없고... 영화도 스스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극명하게 드러내는데, 이야기를 질질 끌고 나가는 게 더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으니까요. 사실 한양을 가는 길에 지친 공길을 위해 광대극을 하는 장생이나 받아주는 공길이나... 신명이 나거나 멋스럽게 느낄지도 모르지만, 쌩뚱 맞은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짜증부터 날 수 도 있고... 광대의 멋... 우린 서편제와 같은 이전의 영화들에서 그러한 장면들과 그러한 수사법들을 익혀왔기에 그런가 보다 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아쉽기는 합니다. 영화 후반부, 공길이 연산군 앞에서 손목을 긋고 그림자놀이를 하면서 장생과 자신의 우정을 이야기 할 때 보면, 장생과 공길은 어렸을 때부터 같이 놀이패에서 생활했었고 공길이 대감들의 놀잇감이 되는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영화 초반의 장생은 난리를 피웁니다. 더 이상 못 견디겠으니 그만하라는 게 아니라, 그것이 마치 처음인양 남색의 당위성을 가지고 우두머리에게 덤비죠. 하긴... 왕이 공길에게 그림자 놀이를 보여주는 것도 공감은 되도 그리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더군요. 어쩌면 저만의 느낌이죠. 장생이 내시 처선 앞에서 당당히 일을 꾸미는 장면이나, 녹수가 감히 왕에게 하대를 하는 것도 귀에 거슬릴 사람이 많진 않을 텐데... 그래도 그건 그것대로 필요한 극중 장치였죠. 아마도 완성도에 있어서 필연성 보다는 개연성이 더욱 중요한 이유가 이러한 현상 때문일까요? 영화는 역사를 배경으로 하지만, 한편의 판타지를 보여주는 듯 합니다. 수많은 오마주들이 몽타주된 듯한 느낌. 그래도 영화는 조선시대 연산군과 광대의 모습을 자신만의 감성으로 관객들에게 전달합니다. 감독이 이야기 하고자 하는 의미는 각자에게 다를지 몰라도 관객은 감독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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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에 필요한 것은 어쩌면 현실에 대한 재현이 아닌 현실 같음, 현실 같음에 대한 상징들이 엮어내는 개연성 혹은 개연성을 끌어내는 힘인지도 모릅니다. 각각의 장면들은 각각의 의미를 지니고, 그러한 장면들끼리 연결되어 보다 큰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꼭 유기적이고 논리적인 구성을 할 필요는 없죠. 꼭 진실 혹은 진실에 대한 재현, 미메시스일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진실이라는 것 자체를 모르는데... 그렇기에 완성도라는 것 자체도 허구일지 모릅니다. 현실의 재현이 필요한 것은 이야기를 위한 배경 정도죠. 그저 배경이구나라는... 마치 그리스 신화처럼 이야기는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이야기가 다시 이야기됨으로써 현실이 되어 또다시 이야기되듯이... 하긴 신화는 고대에서부터 지속되어 온 것이죠.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게 그저 지금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그 무엇... 재현은 현실을 위한 눈속임 장치로 만족할 수 있는 것이고, 이야기에 빠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배경은 그저 배경인가보다 정도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것마저도 현실 아닌 현실이지만... 중요한 건 내 앞에 보여 지는 장면 장면마다, 혹은 그저 공길의 마스크만으로도 수많은 것들을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겠죠. 보여 지는 이미지들의 심볼로서의 기능, 그 장치를 통해 몰입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 상관할 게 있을까?
보여 진다라는 것, 그것은 이미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과 보게 되는 사람, 그리고 이들 사이의 관계를 전제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미지는 단지 그 관계를 한 쪽 면에서 드러내어 조직할 뿐이죠. 필연에 얽매일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그 안에 조직되는 의미들은 치밀하게 해부될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상영된 킹콩을 정신분석학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특히 프란츠 파농 식으로 풀어낸다면, 책 한 권을 족히 나오겠더군요. 그러나 콩의 죽음을 보며 관객은 그저 눈물을 찍어낼 뿐이었습니다. 어차피 관객들에겐 그것이면 족했죠. 단순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려는 사람에게 콩 안에 투사된 흑인과 이소룡 그리고 야만과 문명의 구도 속에서 남녀의 역학이나 그러한 현상들 속에서 드러나는 무의식적인 자기반성과 두려움, 폭력과 용서를 비는 제의적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어쩌면 그것마저도 이론에 자신을 투사시키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려는 또 한 번의 시뮬라크르가 될지도 모르죠. 카이사르가 이야기 했듯이 사람들은 그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고 살아갑니다. 다만 그래서 강압이 아닌 제의를 위한 디자인, 소통을 위한 디자인이 필요한 것이겠죠. 그 누구를 위한 정치적 도구가 아닌 모두를 위한...
물론 그렇지 못한 디자인이 더 많고, 인간이 디자인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죠. 어차피 알면서도 모르는 척, 보이지 않는 강압도 기술이고 경쟁력이고...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죠. 기원전 이스라엘의 한 왕은 당시 성장하고 있던 바빌론의 사신에게 자신의 궁전과 신전의 곳간들을 보여주었습니다. 사신이 돌아가자 선지자가 왕에게 다가와 말합니다. ‘무엇을 보여주었습니까?’ ‘나의 왕궁과 신전의 곳간을 보여주었소.’ 선지자가 예언을 하죠. ‘당신이 보여준 모든 것을 그 사신의 나라에 빼앗길 것입니다.’ 왕은 근심에 차 이렇게 말합니다. ‘언제 그렇게 될 것이오?’ 선지자가 예언하죠. ‘당신이 죽고 다음, 그 다음 후대에 일어날 것입니다.’ 왕은 더 이상 근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크게 기뻐했죠. ‘내가 있는 동안은 그런 일이 없으니 다행이다.’ 오직 힘만이라면... 오직 자신의 정치뿐이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야기 하는 해탈도 나에 얽매인 체... 어쩌면 모든 걸 잃어버린 장생의 허탈과 같은 게 아니었을까요? 그저 잃어버렸기에 포기해 버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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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빛과 어둠 순기능과 역기능 속에서 헤맨다고는 해도, 모호함 그 자체 속에서 남겨진 문명의 흔적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갑니다. 잃어버림 혹은 사라져버림... 그래도 남겨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당시의 의미를 잃어버린 체 덩그러니 남겨진 조각조각의 모양들 속에 디자인의 흔적들은 문명을 지탱하고 있죠. 지금에 와서 베이르사유와 종묘를 보고 요순시대의 학자들처럼 역겨움을 느낄 지식인들이 있을까? 역겨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도처에 널려있다고 생각된다면 그는 어쩌면 흰 뱀의 우화에 나오는 흰 뱀처럼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며 사라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운명이라면 받아들여야 하나?
이미지 혹은 디자인, 그 것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우리의 삶에 대한 거울로 기능합니다. 어쨌든 디자인이 인간을 위하기 위해서는 그 모든 것들을 포용하고 감싸줄 수 있어야 하겠죠. 그것이 과연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든 현상에 대한 긍정... 그것이 디자인이겠죠. 디자인을 통해 즐거울 사람도 아파할 사람도 있겠지만...



P.S. 졸업한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더군요...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두 달을 본의 아니게 쉬었습니다. 혹 몇몇 기다리셨을 분들께 죄송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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