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기운이 몰려오는 10월의 가을날. 화폭에 담긴 2등신의 캐릭터가 입가에 미소를 안겨준다. 메일을 통해 접하게 된 강지만 개인전 ‘Wonderland’는 이윽고 필자의 발길을 갤러리로 향하게 했다.
지난해 각종 주요 아트페어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강지만. 그는 처음부터 현재와 같은 형식을 취한 건 아니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릴 땐 행복해야하는데 왜 그러하지 못한가’라는 의문과 함께 기존 자신의 그림에 답답함을 느낀 나머지 대대적인 방향전환을 모색한 것이다. 아직 연륜이 짧고 활동범위 역시 일정부분 한정적이었지만, 10월 15일부터 31일까지 신사동에 위치한 Erl Gallery에서 진행된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 팝아트 중심에선 작가로서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앙증맞은 캐릭터로 대변되는 그의 작품은 일인칭적인 시점으로 환상을 넘나들며 작가 자신과 현대인들의 또 다른 자화상에 대해 서술한다. 그의 작품 속 ‘강지만 표’캐릭터는 친근함이라는 미덕을 갖고 있으며 그런 이유로 미술에 깊은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들도 다소 어설퍼 보이고 정감 가는 캐릭터를 통해 어려움 없이 작품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한다. 한편 밝고 따스한 색감위에 하나하나 점묘로 찍어 그려내는 기법은 돌가루의 독특한 질감이 더욱 돋보이게 하는 강지만 작품의 또 다른 특징이다. 이렇듯 끈기의 산물인 점묘로 이뤄진, 마치 한 편의 인생풍자극과 같은 그의 그림들은 사뭇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웃음을 선사하는 매력을 발산한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아직 자라지 못한 피터 팬이 세상을 떠돌며 겪게 되는 좌충우돌 방황 여행기에 현대인의 소외감을 덧입혀 소소한 일상을 환상으로 표현해 낸다. 피터 팬이 영원히 자라지 않는 나라 "Neverland에서 벗어나 훌쩍 커버린 현대인이 되어버린, 일상과 환상의 나라 "Wonderland"로 관람객들을 초대하는 것이다.
그의 그림 속엔 생각할 여백이 충만한 일상의 행복과 고독감이 물씬 배어있다. 피터 팬을 동경하듯 망토를 걸친 어딘가 어설픈 어른과 천진난만한 듯 혼자만의 생일을 즐기는 앙칼진 표정의 아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주스를 마시거나 뜨개질에 여념이 없는 태평한 사람의 아이러니한 모습 등 화폭속의 주인공들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서 환상의 나래로 빠져들거나 익살스러운 형태로 화면 곳곳을 누빈다. 이렇듯 캐릭터들은 유머러스함에 가려진 인간사의 쓸쓸함과 외로움, 도시인들의 고독감을 표현하며 그림에 역동성을 부여하는 등 다분히 상징적인 주제들을 현실화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웃기면서도 의미심장한 캐릭터들이야말로 강지만 작품의 진정한 주연들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