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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림트 황금빛 비밀

2009구스타프 클림트 한국전시
클림트의 황금빛 비밀 / 토탈 아트를 찾아서


나는 결코 자화상을 그린 적이 없다. 나 자신이 그림의 소재로는 그다지 흥미를 끌지 않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다른 사람들, 특히 여자들이 내 관심을 끈다. 내가 특별히 다른 사람의 흥미를 끌 만한 사람이
아니라고 확신하고 있다. 내게는 특이한점이 아무것도 없다. 나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그림을
그리는 화가일 뿐이다......사람들은 회화로든 글로든 내 자화상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그다지 유감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에대해 뭔가 알고싶다면
-물론 화가로서의 나 말이다-내 그림들을 주의 깊게 살펴 보고서 그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면 될것이다 _구스타프 클림트



클림트 전시가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슬관에서 열렸다. 이번 전시는 유화 30여점,
드로잉 및 포스터 원본 70여점, 베토밴프리즈 및 작가 스폐셜 인스톨레이션 등 클림트의
대표작품중 110여점을 선보였다.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이자 아시아 최초의 클림트 단독 전시라 고 한다.
1층 전시장에서는 다양한 작품 세계를 보였던 클림트의 초기 작품부터 풍경화를 감상할수 있다.
또한 분리파의 대형 벽화 베토벤 프리즈, 오리지널 포스터, 비엔나 공방작품과 그가 영향을 미쳤던 동시대
화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2층 전시장에서는 에로틱 드로잉과 전시의 핵심인 여성 초상화,
후기 작품들을 감상할수 있다.

<유디트1>
1901년, 캔버스에 유채 84X42Cm

Woman & Allegory
여성과 알레고리


클림트... 가장먼저 떠오르는 작품하면 "키스"라는 작품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하면 "모나리자"가
떠오르는 것처럼...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클림트의 “키스”는 볼수 없었다.
대신 클림트 작품중 팜므파탈의 이미지로 떠오르느 유디트1이 대표작품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1901년 다섯 번째 문리파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산보인 이 작품의 본래 제목은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Judith and Holofernes)'이었다. 반신상의 유디트, 유디트가 팜므파탈의 형상으로 다시 태어난 것은
사실 19세기가 반이나 지난 1840년 프리드리히 에벨(Friedrich Hebbel)의 연극에서였다 연국에서
그녀는 자신의 미모와 지혜를 이용하여 자신감에 가득차 있는 아시리아 장군을 굴복 시키는
미망인으로 그려졌다. 이후 유디트는 자신의몸을 이용해 홀로페르네스를 무기력 하게 만들고 참수
시킴으로써 자신의 복수를 이루는 팜므파탈의 대표작인 여인상이 되었다.

그러나 클림트의 유디트I은 다른 작가의 유디트 이야기를 그린 그림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유디트의 이야기임을 암시해주는 남자의 목을 자르는 여인의 모습도, 칼도 핏자국도 없다.
그저 반나체의 여자가 남자의 머리를 쥐고있을 뿐이다. 이것은 클림트가 작품을 그릴때 사건이나
그 배경이 주가 아니라 인물이 중심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에로틱 드로잉
여성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던 클림트의 에로틱 드로잉은 도발적이고 과감한 묘사로 표현되어있다.
클림트는 우리 몸의 어느 한부분도 추하거나 수치스럽거나 하찮은 것으로 다루지 않고 인체 곡선의
선 하나하나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베토벤 프리즈
=‘행복에 대한 염원은 시를 통해 이루어진다’ 부분 1902년
화장 회반죽 바탕에 카세인 물감, 치장벽토, 연필 스케치, 유리,자개,금박



베토벤 프리즈
=‘적대적인 힘’ 부분 1902년
화장 회반죽 바탕에 카세인 물감, 치장벽토, 연필 스케치, 유리,자개,금박

베토벤 프리즈
=‘행복의 추구“ 부분 1902년
화장 회반죽 바탕에 카세인 물감, 치장벽토, 연필 스케치, 유리,자개,금박

Vienna Secession & The Beethoven Frieze
비엔나 분리파와 베토벤 프리즈

1층 전시를 감상하다 보면 통로 전체를 가득 채우고있는 베토벤 프리즈가 관람객들을 놀라게 한다. 책에서 부분부분 잘려있는 모습으로만 감상할수 있던 작품을 실제 벽화로 감상하니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1897년 창립된 비엔나 분리파는 클림트의 영향을 받은 진보적 예술가들의 그룹으로서 일상 속에 전 방위로 스며들며 삶의 질을 높여주는 매개체로서 예술을 최고의 것으로 꼽았다.
국지적으로 진행되던 예술 분야의체제를 무너뜨리고 하나의 주제 하에 총체적인 프로세스를 갖춘 예술의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 했는데, 이것이 바로 비엔나 분리파의 핵심인 “토탈아트” 라는 운동이다.
토탈아트의 핵심을 가르는 프로젝트는 “베토벤 전시회(The Beethoven Exhibition)"라 불린 제 14회 비엔나 분리파 전시였다.
베토벤프리즈는 1902년 독일 예술가 막스 클링거가 제작한 ‘베토벤 좌상’이 이들의 전시관을 통해 첫 선을 보였을 때,
클림트가 이를 기념하기 위해 바그너의 ‘베토벤 교향곡 9번 재해석’을 주제로 만든 부조 벽화다. 길이는 약 34m이다.

<비엔나 분리파 제1회 전시회 포스터> 1898년, 석판화 62X43Cm

이포스터는 1897년 결성된 비엔나 분리파의 첫번째 전시회를 위해
클림트가 제작한 것이다.

<은물고기(물의 요정)>1901/02년 캔버스에 유채 85X52Cm

머리만 있는 기이한 두개의 형상이 몽환적이고 비현실 적인 느낌을 준다.

풍경화
클림트는 모두 220여점의 적품을 남겼는데, 그중 1/4이 풍경화라고 한다.
대부분 클림트가 1900년대에서 1916년까지 풀뢰게 자매들과 함께 여름을 보낸 오스트리아 북부의 아터 호숫가의 풍경을 담고있다. 그런데 클림트의 풍경화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풍경화를 보고 있으니 다양한 책채로 조밀조밀하게 구성되어 빡빡한 느낌이 들 정도로 두껍게 칠해진 물감층이 불투명하지만 조화를 이루어 따뜻한 느낌을 주었다

<아담과 이브> 미완성 1917~1918년, 캔버스에 유채 173X60Cm

전시장 나가기전 마지막으로 볼수있었던 아담과 이브
아담과 이브를 표현한 다른 그림들과 달리 아담은 이브에게 가려져있고
눈을 감고 있다.마치 지쳐서 잠이 든듯한 모습이다.
반면에 이브는 하얀 피부의 나체를 드러낸체 정면을 향해 당당하게 서있다.
부끄러움이 없는 이브의 모습이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기전의
순수한 이브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였다

세계 최대 규모이자 아시아 최초의 클림트 단독 전시로서 21세기 마지막 전시라는 의미를 갖는다는 이번 2009구스타프 클림트 한국전시...대표작인 “키스”는 없었지만 클림트의 명성이 말해주듯 전시장은 평일인데도 관람객들로 인산인해였다. 그래도 통로에 설치된 베토벤 프리즈와 인물화,드로잉등 그의 작품을 눈으로 직접 볼수있다는것 만으로도 이번 전시회를 관람할 가치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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