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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F갤러리 디 오렌지 기획초대전 - 옥현숙의 그물과 목어
KTF갤러리 디 오렌지 기획초대전 - 옥현숙의 그물과 목어
주최KTF 갤러리 디 오렌지
대상 일반
분야 기타
웹페이지  

담당자명 김지혜 전화  
이메일 patraque@empal.com 팩스  

시인 김경복은 <파도의 길>에서 “발라낸 생선의 뼈를 보면서, 푸른 잎 가지런한 장미꽃을 떠올린다”고 했다. 옥현숙의 발상도 이와 유사하다. 식탁 위에서 식사를 하던 작가는 몸이 함부로 파헤쳐진 채 누워있는 생선의 얼굴에서 해탈의 미소를 만났다고 한다. 그 미소는 ≪장자≫의 <소요유>에서 한낱 물고기이던 곤이 도를 체득하여 붕의 경지에 이른 것과도 같았다. 옥현숙이 목격한 건 ‘피부를 들추어내면 거친 뼈와 추한 근육만이 슬프게 얽혀있다는 육체적 진리’만이 아니었다. 인간들의 식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저항 없이 누워있는 한 생명체의 겸허한 희생을 더불어 목도했던 것이다. 작가는 그 생명에 대한 경외와 연민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여기서부터 그녀의 ‘그물과 목어(木漁)’ 작업이 시작된다.

옥현숙의 고향은 바닷가였다. 바다에 얽힌 그녀의 기억은 작품에서 그물에 걸려 있는 수많은 물고기로 그 형태를 바꾸기라도 한 듯 무수히 많다. 작가에게 바다는 죽은 아이가 떠내려오고, 여자의 긴 머리카락 같은 해조류가 위협하며, 폭풍우와 저주가 늘상 머물러 속내를 알 수 없는 두렵고도 슬픈 곳이었고, 더러운 것들을 삼켜 정화시키고, 봄볕에 찬란하게 빛나며, 어시장에서 장사하는 아낙들의 생계가 되어주는 고맙고도 따뜻한 곳이었다. 온몸을 내맡기고 싶다가도 한 순간 두려워져 발을 빼버리고 마는 그런 대상이었던 것이다. 이는 일탈을 꿈꾸지만 평상심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욕망구조에도 그대로 대입된다.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기억과 삶의 자세를 그물로 재현했다.

옥현숙의 ‘그물’에는 기억만큼 다양한 부유물들이 포획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구슬은 ‘우주를 떠다니던 생전의 망상’인 번뇌를 나타내고 있다고 한다. 작가는 그물이라는 것이 만남의 장을 형성해주며, 그 속에 포획된 요소들은 각각의 사건을 뜻한다고 말한다. 결국 ‘그물과 목어’는 수많은 서사를 담고 있는 거대한 옴니버스 극인 셈이다.

작품에서 그물과 더불어 중요하게 등장하는 요소인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목어는 불교에서 자주 사용하는 도구의 이름과도 같다. 목탁의 원조가 되는 목어는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쉬지 않고 도를 닦으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실제로 정신이 혼미해진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두드리는 용도로 사용된다. 동양철학에 기반을 두고 있는 사주팔자에서도 ‘물(고기)’와 ‘나무’의 인연은 남다르다. 전자는 후자에 생명을 불어넣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의식을 했건 그렇지 않건, 우리는 이렇듯 다양한 의미가 그녀의 작품에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녀의 손에서 탄생한 여러 형태의 물고기들은 우리에게 여러 진리를 깨우쳐주고 있으며, 물고기 형태로 다듬은 소박한 질료인 나무는 생명을 얻은 듯 보인다. 이는 작가의 기억 언저리에 머물러있던 집단무의식이 작용한 탓이리라.

옥현숙이 나무를 유독 선호하는 것은 그것을 깎고 잇는 과정이 인생을 보내는 방식과 많이도 닮아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깎아 모양을 만드는 일은 욕심을 부린다고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조금씩 천천히 주어진 양만큼만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신이 허락한 밥과 능력, 욕심의 양을 인간이 감히 거역할 수 없는 이치와도 같다. 작가는 또 나무가 쇠보다 따뜻하고, 돌보다 부드러우며, 쓰다듬으면 그 결 하나 하나가 자신의 결점을 포용해준다고 말한다. 따라서 가장 인간적이고, 온화한 재료라는 것이다.

무너지지 않는 세월과 견고하게 굳어버린 고뇌를 버텨내는 방식은 여럿이 있다. 그 중에서 옥현숙이 택한 방식은 나무를 깎고, 그물을 꼬는 작업이었다. 작가는 이 ‘그물과 목어’ 작업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숨을 쉬고, 살아간다는 게 편안해졌다고 고백한다. 스무 해가 넘는 인고의 시간을 극복하고, 드디어 작가라는 정체성이 선사하는 기쁨과 여유를 누리게 된 것이다. 지나고 나면 아무리 곱씹어도 그대로 기억되지 않는 시간들, 그것들이 빛을 발하려면 뮤즈의 능력을 부여 받은 예술가의 손이 필요한가 보다. 고로 옥현숙의 작품에서 나는 비릿한 인생의 내음은 그 어떤 향수보다도 향그럽다.

- KTF갤러리 디 오렌지 큐레이터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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