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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이케아를 해킹하는 사람들

생활을 바꾸는 디자인

이케아를 해킹하는 사람들

이케아 해커로 살펴보는 제품 해킹의 양상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는 자급자족의 생활 방식은 산업화 이후 점차 사라져 제품의 생산과 실제 사용자가 완전히 분리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각자 노동으로 번 돈으로 다른 누군가가 만든 제품과 교환하는 방식으로 필요한 물건을 얻는다. 그러한 생산과 소비의 간극을 적극적으로 좁혀가는 사람들이 있다. 완제품을 사용하는 소비자로만 머무는 대신, ‘만들기’를 통해 기성 제품을 자신의 필요에 맞게 직접 개조하는 제품 해커들이다.

해킹이라고 하면 컴퓨터 범죄가 먼저 떠오르지만, 판매되는 기성 제품의 개조를 일컫는 새로운 의미의 해킹이 서서히 확산되고 있다. ‘제품 해킹’이라는 말이 다소 낯설지 몰라도, 다른 사람이 이미 만들어 놓은 물건을 필요에 따라 개조하는 행위는 제품의 탄생부터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례로 보통 오래 사용해 질렸거나 용도에 맞는 기능이 수명을 다한 물건에 새로 칠을 한다든가 잘라내고 덧붙여 새롭게 탄생시키는 ‘리폼(reform)’도 그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데 본래의 형태를 새롭게 다시 만든다는 뜻의 리폼을 넘어, 해킹에는 보다 적극적인 변형과 변용의 의미가 깃들어 있다. 제품 해커들은 필요에 의해서이든 재미를 위해서이든, 나에게 맞고 나에게 보기 좋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기존 제품을 재료로 삼는다.

 

이케아 침대의 목제 다리에 색을 칠해 독특한 모양을 그려 넣은 리폼 사례 ⓒ Morning By Foley

 

 

적극적인 개입으로서의 제품 해킹


이렇게 해킹은 적극적인 개조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 방법과 대상은 다양하다. 기존의 리폼 방식과 비슷하게 아무런 장식이나 무늬가 없는 제품에 원하는 패턴 무늬나 장식을 그리거나 더하는 가장 기본적인 개조가 있다. 이렇게 장식적인 요소를 더하는 것에서 나아가, 여러 제품을 서로 결합하거나 절단해 완전히 새로운 용도의 제품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여기에 새로운 종류의 부품을 더해 전혀 다른 조립 방식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이케아 보조 테이블인 ‘라크(Lack)’의 두 가지 다른 해킹 사례. (왼쪽) 검정 테이블에 나무 무늬 시트지를 꽃 모양으로 잘라 붙인 테이블 ⓒ Crafty Nest/ (오른쪽) 칠판으로 상판을 만든 후 가운데 구멍을 뚫어 그릇을 추가, 분필을 넣어둘 수 있도록 개조한 아동용 테이블 ⓒ YeNz

 

이케아의 ‘베스타(Besta)’와 ‘쿠라(Kura)’, ‘트로파스트(Trofast)’, 세 가지 제품을 하나로 조립해 만든 미끄럼틀과 수납함이 달린 침대

 

각자 실험의 과정을 거친 해킹 아이디어를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나누기도 한다. 일종의 오픈 소스인 셈인데, 작업 순서 및 방법과 같은 노하우 설명과 사진을 올리면 이를 따라 해보고 후기를 올리거나 비슷한 해킹 사례를 공유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하고 수정하며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제품 해킹이 활성화된 것은 이런 해킹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온라인 사이트의 덕이 크다. 이런 온라인 모임이 정보 공유의 장이자 새롭게 해킹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가는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또한, 제품 해킹은 일반적으로 대량 생산 시스템을 거친 제품을 개조 대상으로 삼는다. 자연스레 제품 해커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은 브랜드도 있을 터, 이케아(Ikea)나 무지(Muji) 등이 그렇다. 이케아의 경우 이케아 해커라 불리는 이들이 있을 만큼 해킹 세계에서도 명성이 높다.

제품 해킹은 각자의 개성에 맞춰 기성품을 변형시킨다는 측면에서 소비자인 해커가 중심인 작업이지만, 동시에 해킹 대상이 된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에도 이익이 될 수 있다. 어떤 제품에 대한 특정 해킹 방법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는다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그 해킹 결과물을 소비자의 수요로 해석해 신제품 디자인 및 개발에 반영할 수 있다. 또는 자사 제품의 해킹 접근성을 해당 브랜드의 독특한 개성으로 살려 마케팅의 방식으로 활용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다.

 

 

불편함을 파는 이케아와 제품 해킹


이케아(IKEA)는 1943년 통신판매 잡화상으로 시작된 스웨덴의 라이프스타일 관련 용품 브랜드로, 이 스웨덴 기업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은 전통적인 스칸디나비아 스타일과는 다른 새로운 모던 양식이다. 특히나 가구의 경우, 견고한 재료를 장인이 하나하나 깎아가며 만든 것을 대를 물려 사용한다는 전통적인 가구 개념을, 싼 가격으로 신선한 디자인의 제품을 그때그때 사용하고 버리는 ‘일회용 소비재’로 바꾸어 놓았다.

 

이케아의 플라스틱 조명기구인 ‘람판(Lampan)’ 램프를 여러 개 연결해 만든 샹들리에

 

일회용 소비재로서의 제품을 생산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저렴한 가격이다. 이케아는 “가격을 디자인한다”고 자부할 만큼, 가격을 제품 생산에 있어서 최우선 고려 과제로 삼는다. 한꺼번에 많이 생산해서 가격을 최대한으로 낮추는 규모의 경제가 저가 유지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쪽으로 이케아 특유의 플랫팩(flat-pack) 정책이 있다. 제품을 조립 이전의 부품 상태로 납작한 상자에 포장해 판매하는 플랫팩 방식은 운송 및 보관에 드는 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해 줄 뿐 아니라, 제품 조립을 소비자의 몫으로 남겨 생산 비용에서 제작 공임을 덜어내 준다.

제품 해킹에서 이케아 해커들의 움직임이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이케아의 이러한 특징과 연결되어 있다. 저렴한 가격은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실험적인 제품 개조를 시도할 수 있는 최우선 조건이 된다. 여기에 규모의 경제로 가격이 절감된 덕에 가격 대비 제품 소재의 내구성이 뛰어난 편이며, 무엇보다 소비자가 조립해야 하는 미완성 제품인 플랫팩은 조립 전 부품들을 활용한 해킹 가능성에 활짝 열려있다. 이를테면, 책상과 책장을 사서 두 개가 붙어 있는 하나의 가구로 조립할 수도 있다.

이케아는 해당 브랜드의 제품 해킹 사례만을 모아놓은 이케아 해커스(www.ikeahackers.net)라는 별도의 커뮤니티 사이트가 있을 정도로 대표적인 해킹 브랜드다. 이 사이트에서는 다양한 카테고리로 이케아 제품의 해킹 사례와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이케아의 제품을 소개하는 전시에 해킹 제품이 함께 소개되었을 정도이다. 실제로 2010년 빈에서 열린 전시회 ‘이케아 현상(The IKEA Phenomenon)’에서는 이케아의 대표 제품 및 컬렉션과 함께 이케아 해킹 사례들을 모아 전시하기도 했다.

 

해킹한 이케아 제품으로 꾸민 식당 ‘이크하(IkHa)’ <사진: Nadine Stijns>

 

이케아 해킹은 디자이너들을 매료시키는 주제이기도 하다. 2012년 네덜란드의 오트밀 스튜디오(Oatmeal Studio)가 만든 임시 레스토랑, ‘이크하(IkHa)'가 그러한 경우다. 당시 ‘노르딕 영화제’가 덴 하그 필름 하우스에서 두 달간 열렸는데, 이 기간에 방문한 사람들은 해킹한 가구들로 연출해 놓은 식당을 이용할 수 있었다.

이케아의 선반 구조를 분해하고 새롭게 덧붙여 만든 이 식당은 이케아 매장의 실제 셀프서비스 방식까지 차용하였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이케아 쇼룸에서 사용되는 제품명 표기 용지처럼 생긴 주문서에 먹고 싶은 음식을 적고, 한쪽 벽에 걸려있는 이케아 벽지 롤을 적당할 길이로 잘라 테이블에 일회용 테이블보로 깔고 주문한 음식을 즐겼다.

 

 

3D 프린팅, 제품 해킹의 동반자


제품 해킹에 최적화되어 있는 이케아 제품들이지만 처음부터 해킹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된 것은 아니다. 제품 가격을 절감하기 위한 대량생산에 필연적인 표준화 덕분에 어느 정도는 제품 간 부품의 호환이 가능하지만, 블록형 문구인 ‘레고’처럼 모든 제품을 자유자재로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든 모듈형 제품은 아니라는 얘기다. 따라서 머릿속에 떠오른 다양한 해킹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원래 주어진 디자인과 다른 규격의 제품과 결합하기 위한 별도의 연결 부품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바로 3D 프린터이다.

3D 프린팅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대량 생산에 적합지 않은 제품의 소규모 맞춤 제작을 용이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또한, 많은 3D 제작 프로그램이 오픈 소스 형식으로 온라인 등을 통해 자유롭게 공유되며 그 영역을 확장한다는 점 역시 제품 해킹의 온라인 공유 방식과 생태적으로 닮아있다. 이런 3D 프린팅의 특징을 살린다면 해킹을 위한 조립 및 변형에 필요한 추가 부품을 손쉽게 만들 수 있으며 제작 방식을 해킹 사이트를 통해 공유할 수 있다. 이제 제품 해킹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 낼 수 있는 물건의 가능성은 무한대로 높아진다.

 

이케아의 스툴 의자 프로스타(Frosta)를 3D 프린팅한 부품으로 연결해 만든 어린이용 자전거 ‘드라이지네(Draisienne)’

 

3D 프린터와 연계한 해킹 사례로는 이케아의 스툴 의자 ‘프로스타(Frosta)’ 2개로 만든 어린이용 자전거를 들 수 있다. 스위스의 제품 디자이너와 프랑스의 3D 프린팅 전문가의 협업으로 이뤄진 이 프로젝트는 19세기 초반 프랑스에서 특허를 얻은 최초의 자전거로 알려진 드라이지네(Draisienne)의 이름을 땄다.

이 오래된 자전거는 현재의 자전거와는 다르게 부품 대부분이 나무로 되어 있고, 페달이 없어 발로 차서 앞으로 나아가는 단순한 형식의 자전거였다고 한다. 이케아를 해킹해 만든 드라이지네 역시 바퀴를 비롯한 대부분 부품이 본래 의자용으로 생산된 자작나무 합판으로 되어 있다.

자전거를 조립할 때는 나무로 만든 바퀴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이 문제는 3D 프린터로 뽑은 연결 부품으로 해결했다. 여기에 더해 손잡이 부분도 3D 프린팅 부품을 덧대 보강했다. 이 해킹 제품의 3D 프린팅 파일과 조립 방법은 모두 온라인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으며, 3D 프린터가 없는 경우는 3D 프린팅 부품만 따로 구매할 수도 있다.

 

이케아의 ‘프로스타(Frosta)’ 스툴을 해킹한 ‘프로스타 XYZ’ 연작. (좌측부터) 의자 다리를 걸개로 변형한 벽부착형 옷걸이 ‘프로스타-X’. 의자 좌석 세 개를 덧대 테이블로 만든 ‘프로스타-Y’. 의자 다리를 걸개로 변형한 스탠드형 옷걸이 ‘프로스타-Z’.

 

 

만들기의 귀환


산업화가 한창이던 19세기 영국에서 ‘공예부흥운동’을 주도했던 디자이너이자 예술가, 기업가이자 사회주의자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그의 저서 [에코토피아 뉴스(News from Nowhere)]에서 미래의 유토피아를 그렸다. 그곳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만들며 창작 노동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산다. 현대의 첨단화된 대량 생산 시대에 윌리엄 모리스가 이상적 삶으로 묘사한 것처럼 모든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쓴다는 건 쉽지도 않을뿐더러 반드시 필요한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살린 디자인으로 제품을 해킹하는 행위는 인간의 창작 본능을 일깨우는 일이다. 가까이 있는 평범한 제품들을 자신의 손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단순한 소비자가 아닌 소비자이자 생산자가 된다는 것. 그 가능성이야말로 제품 해킹을 무궁한 가능성을 가진 적극적 창작 행위로 보아야 하는 이유다.

 

발행일 : 2015. 04. 02.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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