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걸디자인을 통한 “법률과 규제 혁신” - 김지은, 정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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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걸디자인(Legal Design)을 통한 “법률과 규제 혁신”
2020. 5. 12.
김지은 한양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정성훈 한양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박사 연구원
올해 초 국내 처음으로 Legal Design @ Thinking을 주제로 워크숍이 열렸다. 한양대학교 Imagine X 연구소 (Imagine X Lab)가 주최한 워크숍은 디자인, 리걸 테크, 인공지능, 법률 등 각 분야의 대표 연사 5인의 기조발표를 시작으로, 온 오프라인 참가자 40여 명이 함께 리걸디자인의 도입에 대한 열띤 토론을 벌이며 향후 국내 리걸디자인 실무적 확산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리걸디자인은 법률 관련 서비스와 시스템의 인간 중심적 혁신을 위해 등장한 개념으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교육프로그램과 연구소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2013년에 설립한 스탠퍼드대학의 리걸디자인 랩 (Legal Design Lab)은, 스탠퍼드 디스쿨(Stanford d.school)과 로스쿨(Stanford Law School)의 합작품으로, 인간 중심 디자인을 바탕으로 법률 관련 혁신 제품, 서비스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법률 분야에 인공지능을 비롯한 정보통신기술도입을 통해 법률 서비스의 효율성, 접근성이 확대되고, 이해관계자를 고려한 서비스 경험이 향상되는 것에 대한 기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러한 움직임은 전통적 디자인 커뮤니티가 아닌 법학 대학 연구소 및 법률 커뮤니티 그룹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대표적인 조직으로는 하버드 법학 대학원의 Access to Justice 연구소, 노스이스턴 대학교의 NuLawLab, 미시간 주립대학교 법학 대학의 Relnvent Law Laboratory가 있다.
리걸디자인은 무엇이며, 기존 디자인 대비 어떤 차별점을 가지고 있는가?
리걸디자인은 법, 규제, 사회적 규범을 혁신 대상으로 바라보며, 이와 관련된 물리적 인공물 (Artifact), 프로세스, 시스템을 인간 중심적으로 디자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리걸디자인은 기존에 활발하게 연구되어온 디자인 씽킹 (Design Thinking), 비주얼 씽킹 (Visual Thinking)과 많은 접점을 갖고 있다 (그림 1). 특히, 비주얼 씽킹에서 강조하는 시각화와 함께 디자인 씽킹의 공감을 통한 문제정의, 확산적-수렴적 사고, 빠른 실행, 학습, 반복적 테스트 및 개선, 참여적 디자인, 다학제적 협력을 리걸디자인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그림 1. 리걸디자인 vs 디자인 씽킹 vs 비주얼 씽킹
리걸디자인의 고유한 영역과 역할은 법, 규제, 사회적 규범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불확실성과 특유의 갈등적 상호작용에서 기인한다. 김지은 교수 연구팀이 제안한 <그림 2. 리걸디자인 사다리> 모델은 리걸디자인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5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리걸디자인 미활용 단계 (Step 0: Non-Legal Design)는 법률문제가 발생하면 변호사 등 법률 전문가를 통하여 사후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기존 접근 방식을 의미한다. 이후 사다리를 올라갈수록 리걸디자인의 역할과 범위가 넓어진다.
리걸디자인은 좁은 의미에서 텍스트 기반으로 이해하기 어렵게 쓰인 법령이나 암묵적 지식을 명확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시각적 표현 도구로 한정할 수 있다 (Step 1: Legal Design as Visual Communication). 하지만 리걸디자인의 더 중요한 역할은 법률 생태계의 복잡한 이해관계자를 이해하고, 함께 협력적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Step 2: Legal Design as Collective Problem-Solving). 또한, 법률과 관련된 잠재적 이슈에 대한 사전예방적 접근 (Step 3: Legal Design as Proactive Approach to Law)과 이해관계자들을 중심으로 한 리걸 시스템 혁신의 도구 (Step 4: Legal Design as Legal System Innovation)로서의 리걸디자인에 대한 관심이 장기적으로 더 요구된다.
그림 2. 리걸디자인 사다리
리걸디자인 1단계와 2단계를 특징으로 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어반 페다고지 센터와 디자이너 캔디 장의 '스트릿 벤더 프로젝트: 벤더 파워!'를 들 수 있다. 본 프로젝트는 뉴욕시 노점상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해석이 모호하거나 분쟁이 자주 발생하는 법령을 노점상인들이 언제 어디서든 가지고 다니며 이해할 수 있는 간단한 리플릿 형태로 시각화하였다. 그 결과 노점상인들이 어렵고 복잡한 뉴욕법을 읽지 않고도, 법을 더 쉽게 이해하고, 법에 따라 노점을 운영할 수 있었으며, 법률과 관련된 마찰이 생겼을 때 자신이 이해한 내용으로 스스로를 변호하거나, 안내서를 경찰에게 보여주는 방법 등으로 자신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림 3. 스트릿 벤더 프로젝트 (streetvendor.org)
스탠퍼드 리걸디자인 랩에서 디자인한 Legal Help FAQs 온라인 플랫폼은 이해관계자 중심 사고와 법에 대한 사전예방적 접근을 통한 법률 시스템 혁신이라는 리걸디자인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사례다.
미국 내 코로나 확산이 고조된 상황에서, 혼란에 빠진 임대인들이 임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임차인들을 퇴거시키면서 심각한 갈등이 빚어졌고, 집수리가 필요한 상황에서 임차인이 건강 상태가 확인되지 않은 임대인의 방문을 거부하는 일도 생겼다. 리걸디자인은 어떻게 활용되었을까?
< Legal Help FAQs 플랫폼>
Legal Help FAQs 프로젝트는 문제의 당사자인 임대인-임차인뿐만 아니라 문제로부터 영향을 주고받는 정부 관계자, 법률 기관, 자원봉사자를 포함한 다학제적 팀을 구성하였으며, 반복적 인터뷰와 워크숍 등을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상충되는 문제들을 수집하여, 코로나로 인한 불확실한 환경 변화와 연방 정부, 주 정부, 시 정부별로 상이한 임대법에 사전 대응할 수 있는 법률 서비스 플랫폼을 개발했다. (자세한 사례 분석은 다음 링크 참조: https://svhub.co.kr/column/info?id=1474 )
리걸디자인은 신기술 및 신산업 도입 시 기존 규제와의 부조화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규제를 기획-디자인-집행-모니터링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적 상호작용을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국내의 경우 핀테크 산업 관련 금융 규제 이슈, 인공지능이 적용된 제품 개발 시 준수해야 하는 EU 일반정보보호규정 (GDPR)의 상이한 해석에 대한 이슈 등 첨단산업 생태계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적 상호작용의 원인이 되는 규제 관련 서비스 및 시스템을 리걸디자인 방법론을 통해 협동적으로 혁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글 : 김지은, 정성훈
김지은 교수는 한양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부교수로, 산업디자인/감성공학을 전공하였다. 디자인과 기술 융합, 디자인과 기술 혁신, 디자인 특허, 인간 중심 디자인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정성훈 연구원은 한양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기술경영학 박사과정 연구원으로, 경영학/기술경영학을 전공하였다. 이해관계자 중심의 법률, 규제, 사회적 규범 관련 문제 해결 및 사전예방을 목표로 하는 리걸디자인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있다.